노력도 타고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되면 합시다

우리는 살면서 꽤 자주, 때로는 습관적으로 '나에겐 재능이 없어'라는 말을 내뱉곤 합니다. 자신의 성과가 미진할 때, 그것을 단순히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면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타고난 재능의 부재로 돌리면 책임의 소재가 유전자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문장은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논리적인 방패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태도는 아닙니다. 실패의 원인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서 찾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은 본능이니까요. 특히 한국처럼 고도화된 경쟁 사회에서 재능의 부재를 미리 선언하는 것은, 더 큰 상처를 피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다수의 사회학 연구는 개인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능력주의 문화권일수록 청년층의 번아웃 비율이 높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맹목적인 노오력 만능주의가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케이스도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자기 방어와 자기 학대 사이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정말 나에게 재능이 없는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자기 진단이 내 삶을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재능과 노력이라는 두 단어에 씌워진 편견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지, 오늘 그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재능의 이해_그냥 신이 조금 덜 친절했을 뿐

저는 재능을 조금 더 건조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효율성'입니다. 예를 들어, 헬스장에서 똑같은 루틴으로 쇠질을 해도 근육이 무섭게 붙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아무리 들어 올려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2023년 <네이처(Nature)>에 실린 한 유전체 연구는, 생물학적 효율성의 차이가 학습 속도와 근력 발달 변이의 약 40%를 설명한다고 하더군요. 그냥 근육의 효율이 그렇게 타고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건 좀 많이 부럽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재능은 투입된 에너지 대비 산출되는 결과값입니다. 누군가는 이 효율성을 더 받고 태어났고, 누군가는 덜 받았을 뿐입니다. 비법은 없습니다. 그냥 신이 저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했고, 나에게 조금 덜 친절했을 뿐이죠.


효율성의 유무 혹은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 어떤 조건과 만나는가 입니다. 내향적이고 분석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 증권사 트레이딩 룸에서는 천재적인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사교성이 필요한 지점 영업 현장에서는 무능한 직원으로 낙인찍힐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인재 관리 시스템이 단순히 우수한 개인을 뽑는 것을 넘어, 개인의 인지적 특성과 직무 환경 간의 초미세 매칭을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재능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현되는 '효율성 함수'입니다. 각자의 함수 기울기를 이해하고, '아, 저 사람의 효율은 저 지점에서 극대화되는구나'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재능을 제대로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기울이는 노력 또한 재능이라면 가혹한가

우리는 흔히 재능은 선천적인 것, 노력은 후천적인 의지의 영역으로 구분하곤 합니다. 그래서 재능으로 이룬 성취보다 땀 흘려 이룬 성취에 감동하며 더 후한 도덕적 점수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과 행동유전학은 끈기, 성실성, 몰입 능력, 심지어 회복탄력성까지도 유전적 기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얘길 합니다. 노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고평가 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죠.


2016년 영국의 Kings College 연구팀은 쌍둥이 연구를 통해 그릿(Grit, 투지)과 성격 특성 간의 유전적 기원을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 그릿의 핵심인 '노력의 꾸준함'은 약 37%의 유전율을 보였으며, 특히 성실성과의 유전적 상관관계는 무려 0.86에 달했습니다. 우리가 '저 친구는 참 성실하게 타고났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힘 역시 타고난 유전자의 발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연구진은 끈기와 성실성이 가정환경보다는 유전과 개인의 고유한 경험에 의해 주로 형성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부모의 훈육이나 가정환경이 자녀의 노력하는 힘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힘도 타고난다


노력하는 능력조차 생물학적 로터리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사실은,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했다'라는 비난을 무안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더해 노력의 결과 역시 재능에 따라 편중된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됩니다. 재능 있는 사람은 1의 노력으로 10의 결과를 얻고, 그 성취감을 연료 삼아 다시 노력할 동력을 얻습니다. 반면 효율이 낮은 분야에서 억지로 노력하는 사람은 미미한 결과에 좌절하며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를 단순히 '정신력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누가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그냥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재능으로 오해받는 결과_인과관계의 무시

우리가 재능을 논할 때 범하는 또 하나의 치명적 오류는, 결과를 곧 재능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성취 안에는 재능이라 불러선 안 될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운과 시대적 흐름입니다.


영국의 재정연구소(IFS)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는 세대 간 부의 축적 수준이 달라지는 이유를 개인의 성향이 아닌, 각 세대가 직면한 경제적 환경(이자율, 주택 가격 등)의 변화로 설명했습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어떤 시대에 태어났는가'라는 환경적 요인이 재산 형성에 결정적이었다는 자료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딱 결과만을 놓고 그 과정에 개입된 수많은 우연을 개인의 재능으로 환원시켜 버립니다. 이러한 편향은 재능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심고,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킵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느냐가 부의 크기를 좌우한다


재능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만, 시대의 수요에 딱 들어맞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시대적 운과 환경적 혜택으로 얻어진 결과물을 두고,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내재적 재능 덕분이라 신성시하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재능이 있어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아 사라지는 인재가 있고, 평범한 재능으로도 시대의 파도를 잘 타 비범한 성취를 이루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모든 성취를 재능 혹은 노력이라는 단순 변수로 설명하려 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부당하게 우상화하거나 비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결과만 부러워하지 말고요.




'하면 된다' 말고 '되면 한다'

재능의 유무를 따져서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을 '있다' 혹은 '없다'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그 간극을 죽어라 노력하면 메울 수 있다는 강박을 버리자는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에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없는 재능을 부러워하는 대신 내가 가진 작은 효율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긍정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성취를 보며 질투하기보다는 '저 사람은 저 영역에서 효율이 좋구나, 나는 내 영역을 찾아야지'라고 쿨하게 넘기는 태도가 진정한 성장의 시작입니다.

일상에선 재앙이지만 예능에선 재능


그냥 인정하면 편합니다. "아, 저건 효율이 안 나오네." "이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구나." 되뇌어보세요. 세상에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성취의 높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깊이로 증명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되면 합시다. 그래도 됩니다.




(참고자료)

Youtube) 노력으로 재능을 이긴다는 말이 거짓인 이유

True grit and genetics: predicting academic achievement from personality

How and why might the wealth of different generations be expected to differ?

Genes and Athletic Performance: The 2023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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