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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28. 2015

베르나도트 : 프랑스에서의 삶(2)

어린 시절

1763년 1월 마지막 주 베아른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중심도시인 포에서 카니발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 화려한 축제에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역 법률가인 앙리 베르나도트의 부인이었던 마담 베르나도트였다.  그녀의 출산일은 원래 몇 주 후였기에 출산은 급작스러운 것이었고, 1763년 1월 26일 남자 아이를 조산했다. 


베아른 지방은 자주 가스코뉴 지방의 일부로 여겨졌으며, 가스코뉴는 100년 전쟁 당시 영국의 중요한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후 베르나도트에 대해서 "가스코뉴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자신의 조국에 등 돌리고 총을 겨눈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베아른 지방은 앙리 4세 때 프랑스에 편입되었다. 앙리 4세는 전형적인 "베아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뛰어난 군인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사로잡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떠나 프랑스의 국왕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베아른 출신이었던 베르나도트 역시 선임자와 같은 길을 걸었다


베르나도트의 생가,현재 베르나도트 박물관


베르나도트의 아버지는 포에 있는 국왕의 법정에서 공식적인 직함(Procureur au senechal)을 가지던 법률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St. Jean이라는 성을 쓰는 가문 출신으로 이 가문은 오래도록 포 인근에서 살았으며, 주변의 몇몇 귀족 가문들과도 연관되는 가문이었다. 베르나도트의 형제는 모두 다섯 명이었고, 그는 막내로 태어났다. 베르나도트가 태어났을 때 형제 중 형인 장과 누나인 마리만이 살아있었다. 막내로 태어난 베르나도트는 장 바티스트라는 이름을 받았다. 형의 성인이 사도 요한이었던 것에 반해 동생의 성인은 세례자 요한이었다. 그렇기에 장 바티스트라고 불리게 된 것이었다. 


베르나도트 집안은 지역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생존해있는 동안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조산으로 태어난 베르나도트는 허약한 소년이었고 자신의 삶이 길거나 유용할지가 의문인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기도 했다. 

포에서는 베르나도트에 대한 이야기가 몇 가지 전해져 오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 시절부터 싸움을 즐겼고 우편마차의 말들을 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자주 우체부들을 도와주고 소득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가 다른 이들(주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이 들)과 자주 어울리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삶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문제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도 했다.


베르나도트는 아버지와 형과 마찬가지로 법률가가 되기 위해 14살에 법률학교 학생이자 도제가 되었다. 아버지와 형과 달리 그는 법률학교에서 만족하지 못했다. 그의 문제 행동은 언제나 부모의 걱정이 되었는데, 특히나 베르나도트의 어머니는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던 큰아들에게 언제나 이 문제를 이야기했고 결국 그는 가족 내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아이가 되었다.  몇몇 이들은 그가 후에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나이 든 사람에 대해서 그다지 공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린 시절 가족들의 질타로 인해 불행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가족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건강과 너무나 예민한 감수성탓도 있었을듯하다. 


이런 가족 내 불화는 후에 그가 군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을 떠나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무훈을 세웠고, 이런 경향은 결혼한 후에도 집에 있지 않고 늘 전장으로 다녔다. 이 때문에 부인인 데지레는 남편이 떠나 있을 때면 남편 때문에 울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도 언제나 다시 떠나려 하는 남편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는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 마음에 상처를 극복했다. 그는 군에 입대한 후 어머니와 형에게 언제나 애정 어린 편지를 썼으며, 특히나 어머니는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베르나도트가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1780년 3월 31일 아버지의 죽음 이후였다. 그는 법률가가 되기 위해 도제로 일한지 2년이 되던 해였다. 그는 이제 스스로 독립해야 할 시기라고 여겼으며 1780년 9월 그는 집을 나와 프랑스 군에 자원 입대했다.  베르나도트가 입대한 이유는  군대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는 어머니와 형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했었다. 이렇게 베르나도트는 군인으로써 첫발을 내디뎓다. 


그는 프랑스 혁명 중에서 장군이 되었고 후에 프랑스의 원수가 되었고, 스웨덴의 국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루이 15세 때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11살 때 루이 16세가 국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입대하던 날은 네케르가 실패해서 파면되기 직전이었으며, 이후 8년간의 혼란을 겪기 전이었다. 베르나도트는  루이 16세의 군인으로 출발했다.


베르나도트, 1792년 프랑스 육군 장교

그림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2.Bernadotte: the first phase 1763-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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