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로이테: 사이이다 살메 이야기
1870년 루돌프 하인리히 로이테라는 독일 상인이 사고로 사망합니다. 그는 아내와 세아이를 남겨둔 상태였죠. 루돌프의 아내인 에밀리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고 1886년 자신의 어린 시절과 루돌프 하인리히 로이테와의 결혼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한 권 출판하게 됩니다.
루돌프 하인리히 로이테와 결혼 후 에밀리 로이테라는 이름의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이 여인은 사실 태어날 때는 이 이름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죠. 그녀는 사이이다 살메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이슬람교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그냥 아랍 출신의 여성이 아니었는데 사이이다 살메의 아버지인 사이드 빈 술탄은 무스카트와 오만의 술탄으로 그곳의 통치자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밀리 로이테는 "아랍의 공주"였던 것입니다.
사이이다 살메는 사이드 빈 술탄과 코사서스 출신의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사이이다 살메가 12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으며, 그녀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사이이다 살메는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말타기나 총쏘는 법도 배웠습니다. 사이이다 살메는 몰래 글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죽은 후에 어머니의 재산도 물려받았던 살메는 곧 가족 내부의 불화에 휘말립니다. 두 오빠가 권력다툼을 했고 이에 살메도 말려들게 됩니다. 결국 살메가 지지하던 오빠는 패배했고 다른 쪽 오빠가 승리했죠.
가족 간의 다툼이 정리된 후 사이이다 살메는 다시 고향을 돌가아죠. 그리고 거기서 루돌프 하인리히 로이테를 만납니다. 그는 사이이다 살메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둘은 곧 친해졌고 살메는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1866년 8월 살메가 임신한 것을 남들도 알아차리게 되죠. 그러자 문제가 생깁니다. 살메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독일인이었죠. 이는 큰 문제였기에 살메와 루돌프는 야반도주하기로 결정합니다. 친분이 있었던 영국 공사 부부가 둘을 도와주죠. 그녀는 영국 프리깃함을 타고 아덴으로 갑니다. 그리고 12월에 아들을 낳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인 1867년 살메는 결혼 직전 개종한 후 루돌프와 결혼합니다. 개종하면서 그녀는 에밀리라는 이름을 얻었고 결혼해서 곧 에밀리 로이테가 되죠.
결혼 후 남편과 아들과 함께 둘은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돌아갔고 함부르크에 정착합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에밀리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난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게 되죠. 이것은 아프리카 쪽 식민지 경영에 힘쓰던 독일 정부의 흥미를 끌게 됩니다.
비스마르크는 식민지 계획에 에밀리를 이용하게 됩니다. 비스마르크는 에밀리 로이테가 잔지바르의 술탄의 누이였기에 에밀리의 아들을 잔지바르 술탄으로 내세워서 잔지바르를 독일의 보호 아래 두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에밀리 로이테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수년간 아프리카에서 살았죠.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에밀리 로이테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이후 에밀리는 1924년 79살의 나이로 독일 예나에서 사망합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