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의 시대

유럽의 귀족들과 결혼하는 미국의 상속녀들

by 엘아라

도금의 시대(The Gilded Ag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이다. 둘은 당시 시대를 풍자한 소설을 공동으로 집필했고 이 소설의 제목이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였다. 여기서 도금의 시대라는 말을 쓴 것은 아무리 시대가 번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결국 이것은 "황금기 Golden Age"가 아니라 단지 황금처럼 보이도록 번쩍이게 도금한 것뿐이라는 의미였다.


1.jpg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


미국에서 도금의 시대라고 불리던 시대는 19세기 중엽에서 말까지를 의미한다. 시대적으로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 사회가 통합되면서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현대적의 "대량생산"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결국 이런 대량생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했고 이 인프라 구축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큰 돈을 벌기 시작한 때도 이때였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철도와 철강산업을 주도했던 인물들이었다. 또 주식시장이나 금융업도 활발했으며 이들 역시 큰 돈을 벌었다.

이 시기에 돈을 번 많은 이들 중 일부는 불법적인 일을 태연히 진행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제이 굴드"였다. 역사상 최악의 금융 사건인 "검은 금요일"을 일으킨 장본이기도 한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불법적인 일을 했으며 법망을 피하기 위해 주를 바꿔 다니고 뇌물을 주는 등의 일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다.


Jay_Gould.jpg 제이 굴드


결국 미국의 부유층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살았으며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동부 상류사회 사람들은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통해 일반인들과 자신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1897년 은행가였던 브래들리 마틴의 가장 무도회는 뉴욕시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무도회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미국에서 부자들에 대한 반발심을 크게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문들끼리 폐쇄적인 통혼을 통해 결속력을 더욱더 공고히 해나가게 되고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만이 인정하는 높은 지위"가 아니라 실제로 귀족 작위를 가지길 원하게 된다.


19세기 말 유럽의 귀족들은 대부분 재산이 토지였다. 이런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은 현금 유동성이 매우 떨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자신의 땅을 팔 수도 없는 문제였는데 유럽의 귀족 작위는 토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럽의 귀족들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속녀들을 찾았고 현금이 넘쳐 나던 미국의 상속녀들은 유럽의 귀족들과 결혼할 기회를 잡는다.

처음에는 "귀천상혼"이 없던 영국 쪽 귀족들이 상속녀들과 결혼했지만 점차적으로 유럽의 가난한 귀족이나 왕족들 역시 미국의 상속녀들과 결혼하게 된다. 결국 미국의 상속녀들은 남편감을 쇼핑하러 유럽으로 가거나 반대로 유럽의 귀족들은 자신의 작위를 가지고 상속녀를 구하러 오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은 양자에게 이득이었는데 상속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유럽 귀족(또는 왕족)"의 친척이 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유럽의 귀족에게는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George_Charles_Spencer-Churchill00.jpg 8대 말버러 공작 조지 찰스 스펜서-처칠, 미국 상속녀였던 릴리안 워렌 프라이스와 결혼


이런 상속녀와 귀족들간의 결혼이 성행하자, 미국에서는 상속녀들이나 아니면 귀족들과 결혼을 원하는 여성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구성되기에 이르렀고, 상속녀와 귀족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전문 중매쟁이가 등장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런 중매쟁이들은 스스로 유럽의 귀족들과 결혼한 미국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결혼은 대부분 불행하게 끝났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랑보다는 목적을 가지고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정략결혼들에서 여성들은 힘없이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상속녀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남편과 그 식솔들을 먹여 살렸기에 마냥 참고만 살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재산으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됐던 상속녀들은 돈 때문에 결혼한 남편과 불행해지면 남편을 떠나서 사는 경우도 많았다.


유럽의 귀족과 결혼한 미국의 상속녀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말버러 공작부인이었던 "콘수엘로 밴더빌트"일 것이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첫 재벌이나 마찬가지였던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증손녀였다.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가 죽을 당시 그의 현금 소지액은 미국 전 국민의 예금 1%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콘수엘로 밴더빌트는 어머니 알바에 의해 등 떠밀려서 말버러 공작과 결혼했다. 말버러 공작 부부는 서로 잘 맞지 않았고 결국은 이혼했다. 콘수엘로는 이혼 후에 자크 발상을 만나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과는 매우 행복했다고 알려져있다.

그 외에도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였던 제니 제롬, 그리스 왕가를 먹여 살렸던 낸시 리즈(그리스의 아나스타샤 공비), 커즌 남작부인과 서퍽 백작부인이 되는 라이터 자매들등 수많은 상속녀들이 유럽으로 시집 갔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 나오던 백작부인처럼 남편과 별거하거나 이혼했다.

Consuelo_Vanderbilt7b.jpg 콘수엘로 밴더빌트, 9대 말버러 공작의 부인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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