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11)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마지막

by 엘아라

핀란드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루면서 독립을 얻어냈지만, 그렇다고 러시아 황실 가족들을 머물게할수는 없었다. 결국 더키와 키릴은 핀란드를 떠나서 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독일로 간다. 이곳에서 그들은 러시아의 각자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더키의 어머니는 수입의 대부분이 러시아에 있던 재산에서 나오는 것이었지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녀는 재산을 잃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작센-코부르크-고타 역시 공화국이 되면서 러시아 황제의 딸이며 영국 여왕의 며느리였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었다. 키릴의 어머니인 미헨 대공비는 가문의 보석 상당수를 가지고 도망칠수 있었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늙어버렸고 키릴은 처음에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었다고 한다.


Mariemecklenburg1854.jpg
800px-Grand_Duchess_Maria_Alexandrovna,_1914.JPG
화려했던 시절의 미헨대공비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더키와 키릴은 독일에 머물면서 많은 망명왕족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의 원천이자 동시에 의무를 수행해야하는 나라로 돌아갈수 없는 기약없는 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게다가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키릴과 더키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특히 키릴은 공황장애가 생겨서 더키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수 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키릴은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방법으로 제위 주장을 선택했으며 더키는 이런 남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lossy-page1-800px-Grand_Duchess_Cyril_at_Tomb_of_Unknown_Soldier_LCCN2016839015.tif.jpg 무명용사의 묘지를 참배중인 더키


사실 키릴의 제위 주장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다. 그는 니콜라이 2세와 알렉세이 황태자 그리고 니콜라이 2세의 동생이었던 미하일 대공 다음으로 제위를 주장한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혁명직전 이 셋은 모두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었다. 하지만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이자 니콜라이 2세의 어머니인 마리야 황태후는 아들과 그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가문에서는 제위에 대한 문제는 황태후가 죽은 다음에 이어가자고 결정했었다. 이때문에 키릴의 제위 주장에 황태후는 반역이라고 화를 냈었고 다른 이들 역시 못마땅해했다. 게다가 키릴은 혁명때 황제가 아닌 두마에 가장 먼저 충성을 맹세했던 인물이었기에 많은 황족들은 그를 반역자로 여겼으며 제위를 이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기도 했었다. 이런 문제는 훗날까지 러시아 황실의 수장이 누군가에 대한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The_Vladimirovich_siblings_in_exile.jpg 망명중의 키릴 대공과 더키 그리고 키릴의 동생들


더키는 남편을 위해 지지자들을 모으고 다시 러시아 황실로 돌아갈수 있게 여러 친척들을 만나면서 열성적으로 돌아다니게 된다. 특히 공황장애로 밖을 나가지 못하는 키릴을 위해서 그녀가 더욱더 열성적으로 돌아다녔던 것이었다. 하지만 더키는 자신의 친척들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돕지 않는것에 크게 실망한다.


더키는 장녀인 마리야가 라이닝겐의 후계자와 결혼한뒤에 독일에서 프랑스로 옮겨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황태후를 비롯한 러시아 황실의 많은 어른들이 사망하면서 자연스럽게 키릴은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하지만 지지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키릴은 그저 황제라고 칭하는 사람이었을뿐이었다.


800px-Victoria_Melita_and_her_two_youngest_children.JPG 더키와 키릴 그리고 두 아이인 키라와 블라디미르


1933년까지 더키는 키릴을 위해서 매우 열성적으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이해 더키는 끔찍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이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키릴이 그녀를 배신하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런 소문이 돌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더키는 자신이 안 사실을 언니인 마리 왕비에게만 알려주었고 마리 왕비는 정확히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어떤 일인지는 알수가 없다. 그러나 이 일로 더키는 더이상 남편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배신감에 매우 우울해했으며 그와 함께 있거나 그가 자신을 만지는 것마저 싫어했다고 한다.


Vladimir_Cyrillovich%2C_Grand_Duke_of_Russia.JPG 1935년 더키와 키릴, 키라와 블라디미르


비록 남편에게 매우 실망했고 우울했지만 그녀는 아이들과 남편 앞에서는 이 사실을 철저하게 감추었고 남편과 떨어져지내기 위해 자녀들에게 더욱더 집중했으며 여러곳을 여행다니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을 돕지 않아서 실망했던 고향 영국에 다시 갔었으며, 언니가 있는 루마니아에도 갔고 자녀들과 여동생이 있는 독일에도 갔다. 특히 자녀들이 일이 있으면 열성적으로 매달렸는데 1935년 딸인 마리야가 아이를 낳게 되자 그녀는 딸이 아이를 낳는 것을 돕기 위해 당연히 독일로 갔고 열성적으로 딸을 돌봤다.

아마도 더키의 실망감과 우울함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다른 일에 몰입한 것은 더키의 건강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결국 1936년 더키는 갑작스럽게 쓰러졌으며 가족들이 다 모인 가운데 더키는 1936년 3월 1일 사망했다.


Victoria_Melita_of_Russia_%281914%29.jpg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두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더하기

올해 초에 새해 특집으로 시작한 글을 10월인 지금에야 끝냅니다.

sticker sticker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 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