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10)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1차 세계대전

by 엘아라

세계 제 1차대전은 유럽 왕가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였다. 특히 러시아는 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나라 전체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이미 이전에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20세기가 되었음에도 러시아는 이전의 낡은 체제를 탈피할수 없었고 결국 나라의 구조적 문제는 러시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1차대전은 러시아의 이런 모습을 바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었다.


1차대전때의 러시아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이 황제에 대한 신뢰를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혁명이 시작되자 이제 두마(의회)가 권력을 손에 쥐고 황제를 퇴위시키려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더키의 남편인 키릴은 수도에 있었고 황실 가족들 중에서 황제가 아닌 두마에 충성을 맹세한 첫번째 사람이었다. 키릴은 자신의 부하들이 폭동을 일으킬것을 두려워했기에 그렇게 행동했지만 황실 입장에서는 배신이나 마찬가지였다.


360px-Wiktoria_Melita_z_m%C4%99%C5%BCem.JPG 더키와 키릴


혁명이 진행되면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은 연금당했고 다른 황실 가족들의 생명도 위험해지고 있었다. 혁명이 일어났을때 더키는 40대였고 임신중이었다. 이런 상황은 키릴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우선으로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니콜라이 2세와 그 아들이 권리를 포기하고, 황제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 역시 황위를 거부한뒤로 황위계승권을 가진 인물이었다. 아직까지 황위가 어떻게 될지 알수없는 상황에서 망명하는 것은 황위계승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더키가 임신한 아이가 아들이라면 그에게는 황위계승권이 더 공고히 하는 것이었으며, 황위계승자가 될 아이가 러시아 밖에서 태어나는 것은 복잡한 상황을 나타낼수도 있었다.


결국 키릴은 러시아 혁명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나있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아래 있는 핀란드로 가려했다. 핀란드는 자치를 하고 있긴 했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아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임신중이었던 더키는 핀란드에서 아들인 블라디미르를 낳게 된다.


1806173D4DF8CD9F0BCE6B 키릴과 더키 그리고 세 아이들


하지만 핀란드에서의 나날들은 편안한것이 아니었다. 핀란드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했는데 더키의 사촌이자 이웃나라였던 스웨덴의 왕태자비였던 코넛의 마거릿은 블라디미르에게 먹일 분유조차 없다는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핀란드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적군과 백군이 내전을 시작하게 되면서 핀란드에서도 적군과 백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는 달리 백군이 승리했고 결국 1차대전이 끝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이룩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러시아의 황위계승자였던 키릴과 그 가족들의 처지는 애매하게 되었고 결국 핀란드에서 더이상 있을수 없게 된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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