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9)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러시아에서

by 엘아라

1910년 더키와 키릴은 러시아로 돌아갔으며 러시아에서 자리 잡게 된다. 더키는 자신의 새로운 조국이 된 러시아에 대해서 매우 열광하게 된다. 러시아어를 배우는 등의 일을 했으며 러시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을 했다. 러시아로 돌아가기전 둘의 둘째아이인 딸 키라가 태어났는데 후계자가 될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키릴에게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364px-Grand_Duchess_Victoria_Feodorovna_and_her_two_daughters.jpg 러시아 대공비의 궁정 예복을 입고 두 딸들과 함께 있는 더키


키릴은 다시 해군 지위를 얻었으며 함장이 되지만 해군을 떠나게 된다. 키릴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불리는 심리적 상태가 된다. 그는 1904년 침몰하는 배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었다. 이후 그는 추방 상태였기에 그는 해군으로써 일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러시아로 돌아와서 자신의 해군 지위로 복귀하자 그는 배에 타야했고 곧 끔찍한 악몽에 직면하게 된다. 키릴은 배에 타면 늘 불안해했으며 자신을 끌어당기던 바다속의 깊고 검은 심연에 대한 악몽을 꿨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해군을 영영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대공이었으며 육군에서 다른 지위가 주어졌다.


362px-Le_grand_duc_Cyril_Vladimirovitch_et_sa_famille_%281922%29.jpg 키릴과 더키 그리고 둘의 두 딸들, 1912년


더키는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바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그녀의 시어머니였던 미헨 대공비의 영향력때문이었다. 알렉산드르 3세 시절 이후 러시아 사교계는 두명의 여성이 지배했었다. 한명은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였으며 또한명은 블라디미르 대공의 아내였던 미헨대공비였다. 알렉산드르 3세가 죽고 니콜라이 2세가 즉위한 뒤 황태후가 된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러시아에 있기 보다는 친정인 덴마크나 아니면 친척들을 주로 보러 다녔으며,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냈었다. 마리야의 지위는 니콜라이 2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가 이어받아야했었는데, "수줍음 많은 성격"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라는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고 주변 사람들과 조용한 가족생활을 더 좋아했다. 결국 이것은 황후가 사교계에서 동떨어지게 되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남아있던 여성인 미헨 대공비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헨 대공비의 며느리였던 더키는 황후에 비해 사람들에게 훨씬 더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640px-The_Romanovs_1892.jpg 알렉산드르 3세와 마리야 황후 그리고 러시아 황실 가족들, 왼쪽에서 두번째 여자가 미헨 대공비, 가운데 흰옷이 마리야 황후입니다.


더키는 엣 시누이이자 사촌이었던 알렉산드라 황후와의 마찰을 피할수는 없었다. 황후는 여전히 더키를 싫어했으며 이것은 더키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비록 황후와 껄끄러운 관계이긴 했지만 황후인 알렉산드라는 더키보다 훨씬더 고립되어있었으며 이때문에 더키가 러시아에서 사는 것에는 별다른 힘든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더키는 물론 러시아 황실 가족들 대부분과 그 친척들에게 비극이 되는 1차대전이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The_imperial_family_among_them_Grand_Duke_Boris_Vladimirovich_of_Russia.jpg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딸들과 블라디미르 대공의 자녀들과 그 가족들, 맨 왼쪽에서 세번째가 더키,맨뒤 남자가 키릴입니다. 옐레나 여대공과 그 딸들, 미헨대공비등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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