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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19. 2015

우왕좌왕한 요크 공작은 누구?

동요 The Grand Old Duke of York 에 대해서

The Gand Old Duke of York(또는 The Noble Duke of York)는 영국의 동요 중 하나입니다. 이 노래는 주로 야외활동에 많이 쓰이는데 노래 가사에 up and down이 반복되기에 사람들을 일어섰다 앉았다 시키기 좋은 노래라고 합니다.


동요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Oh, The grand old Duke of York,
He had ten thousand men;
He marched them up to the top of the hill,
And he marched them down again.


And when they were up, they were up,
And when they were down, they were down,
And when they were only half-way up,
They were neither up nor down


https://youtu.be/-5LgybHRDeI

노래

노래 가사를 보다시피 내용은 요크 공작이 군대를 데리고 우왕좌왕하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는 매우 유명하지만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려져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노래가 자주 프랑스와 관계되는데 한때는 저기 나폴레옹이 들어가기도 했었으며, 제일 오래된 가사에는 프랑스의 국왕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The King of France with forty thousand men,
Came up a hill and so came downe againe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이 노래는 결국 "요크 공작"에 대한 노래로 정착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노래의 요크 공작이 누구일까에 대해서 잠깐씩 생각해보게 됐던듯합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려면 일단 군대를 데리고 우왕좌왕할만한 요크 공작이어야 했고 결국 세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듯합니다.


첫 번째는 요크 공작 리처드로, 장미전쟁 때 요크가의 수장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바로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죠. 그리고 손녀가 요크의 엘리자베트로 헨리 7세의 왕비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1460년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때쯤 랭커스터가 의 수장이자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 6세는 군대를 지휘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죠. 하지만 그의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은 뛰어난 여성으로 국왕 대신 갑옷을 입고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요크가가 왕위 계승권을 장악하려 하자 마거릿은 요크 공작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요크 공작의 목을 벴다고 합니다.   

요크 공작 리처드,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아버지


두 번째는 후에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가 되는 요크 공작 제임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크롬웰에게 죽은 찰스 1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 공주였던 헨리에타 마리아죠. 제임스는 형 찰스 2세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됩니다만, 가톨릭 옹호와 왕권강화 때문에 의회와 마찰을 빚습니다. 결국 의회는 제임스의 사위인 오라녜 공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오라녜 공은 잉글랜드를 침공합니다. 제임스 2세는 의회나 잉글랜드 군대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것을 알고 사위와 싸우지 않고 망명합니다. 물론 오라녜 공 역시 싸움을 피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천천히 이동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제임스 2세


마지막은 영국의 조지 3세의 둘째 아들인 요크와 알바니 공작 프레드릭입니다. 그는 생후 200일이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에게서 Prince-Bishop령을  하사받아 군주가 됩니다. 하노버에서 성장했으며 괴팅겐 대학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군인으로 자랐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전해서 영국군 총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1793년과 94년 사이 요크 공작은 플랑드르 전선에 있었는데, 특히 옹드코스트 전투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했습니다.

요크와 알바니 공작 프레드릭, 조지 3세의 아들


사실 이 노래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노래는 아닙니다. 요크 공작 부분에 어느 누구를 넣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니까요. 아마도  "요크 공작"으로 정착되기 전에는 영국의 적들의 이름이나 아니면 무능한 지휘관의 이름을 넣어서 불렀을듯합니다.



더하기

저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요크 공작인 프레드릭을 찍어볼까 합니다. 1793년 Farmars전투 당시 요크 공작은 프랑스 화력이 너무 강해서 강을 바로 건너지 못하고 둘러서 가야 했는데 요크 공작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난 뒤였다고 합니다. 또 요크 공작이 패배한 옹드스코트 전투에서 그곳 지형이 언덕들이 많은 지형이라고 합니다. 병사들이 계속 어딘가 올라갔다 내려와 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물론 나머지 두 공작들도 찾아보면 찍힐 만했을 테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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