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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26. 2015

빅토리아 여왕이 잘생겼다고 평가한 인물들

잘생긴 사람을 좋아했던 여왕이  고른 미남 왕족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잘생긴 사람"들을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여왕이 잘생겼다고 평가한 당대 미남 왕족들을 살펴볼까합니다.


1.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빅토리아 여왕은 젊은 시절 역시 아내감을 찾으러 다니던 러시아의 황태자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런던에서 만났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젊은시절 나름 파티녀셔서. 날밤 새도록 춤췄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대신 늦게 일어남)

어쨌든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오동통한 여왕은 키크고 잘생기기로 유명한 로마노프가문의 후계자와 잠시 눈이 맞는듯 했습니다만. 알렉산드르 2세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1세가 "황후감이 필요하지 여왕의 남편이 될 필요는 없다"라고 화내셔서 둘 사이는 그걸로 끝났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 2세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둘은 사돈관계로 엮기게 되는데 여왕의 아들인 앨프러드와 황제의 딸인 마리야가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둘다 쌍수를 들고 반대했었습니다.


2.앨버트 공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공은 나이 들면서 살찌고 머리 벗겨지고 우울해지셔서 외모가 좀 상하셨습니다만 젊은시절에는 그래도 나름 한 외모 하셨다고 합니다. 여왕의 외삼촌이자 앨버트공의 숙부인 레오폴1세가 둘을 엮어줄려고 무진장 노력해는데 처음에는 여왕이 시큰둥해해었답니다. 그러다가 좀 지난후에 여왕이 다시 앨버트를 만났는데 "너무나 아름다웠다"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여왕님 DNA에 그나마 앨버트공 DNA가 섞여서 아들들이 어린시절에는 꽃돌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앨버트공 1860년



1842년 빈터할터 작품, 빈터할터의 영국 왕가 그림이 미화가 좀 심하긴 하지만 앨버트공의 나이든 사진을 보면 젊었을땐 저랬을듯합니다.


게다가 여왕님보다 몇달 어리기까지 합니다.


3.헤센의 루드비히 4세

여왕이 가장 예뻐한 사위였던 루드비히 4세는 헤센 대공의 후계자였습니다. 원래 헤센 대공가문이 미모로 나름 유명한 가문인지라... 헤센 대공가의 방계 가문이었던 바텐베르크 가문은 당대에 "유럽에서 제일 잘 생긴 가문"이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였죠.

그는 아내인 앨리스 대공비와는 아주 행복한것은 아니었는데 둘이 서로 안 맞았다고 합니다. 루드비히는 잘생긴 외모였지만 학구적이지 않았고, 여왕을 닮은 외모였던 앨리스 대공비는 아버지 닮아서 학구적이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둘은 서로를 잘 이해 못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둘은 묶어줬다고 합니다. 또 루드비히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꼼짝 못했던 사위였던것도 있을듯합니다.


헤센의 루드비히 4세, 1860년



4.바텐베르크 가문 형제들

여왕이 이 형제들한테 열광했는데, 장남인 루드비히는 어린시절부터 영국 해군으로 복무햇는데 여왕이 "어머니와 같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루드비히는 결국 여왕이 가장 예뻐한 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와 결혼해습니다. 누나였던 마리 에르바흐에 따르면 루드비히는 젊은 시절에는 라파엘 같았고 나이들어서는 벨라스케스 같았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 1884년




차남인 알렉산더에게도 호감을 보였는데, 그가 불가리아의 통치 군주가 되면서 여왕은 자신의 외손녀인 독일의 빅토리아 (모레타)와 결혼시킬려고 열을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 궁정에서는 고작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의 군주에대가, 정치적으로도 대립 관계였던 알렉산더와 모레타와의 결혼을 반대했었고, 결국 알렉산더는 헤센 극장의 배우와 결혼해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의 알렉산더, 불가리아의 통치 군주




삼남인 하인리히에 대해 여왕은 "형제들중 제일 잘생겼다"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하인리히는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결혼했는데 여왕이 처음에는 둘의 결혼을 결사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하인리히가 그냥 여왕을 모시고 살기로 결정하면서 여왕의 반응은 180도 바껴서 이제 자기 사위한테 뭐라는 사람들과 다 쌈질 할정도였습니다.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




막내는 별말 없는것을 보면 의외로 여왕님 취향이 아니셨던듯 합니다만 막내도 형들이랑 비슷하게 생겼었습니다. 가문의 막내는 프란츠 요제프로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아버지인 헤센의 알렉산더가 오스트리아 장군으로 일했고 황실 가족들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누나인 마리 에르바흐의 책에는 어린시절 어머니와 함께 간 교회에서 시씨황후를 만난 이야기라던가 나이가 들어서 황제를 알현했을때 고인이 된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함께 한다던가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텐베르크의 프란츠 요제프



5.포르투갈의 페드루 5세

페드로 5세는 앨버트공과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었던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페르디난트와 포르투갈의 여왕인 마리아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여왕과 앨버트공이 페드로와 좀 친했는데, 여왕이랑 앨버트공이랑 페드로를 예뻐했습니다.


포르투갈의 페드루 5세

 

그는 순정파로 더 유명한데 아내인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스테파니가 죽고 난뒤 혼담도 거절하고 홀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생각하면서 자주 울었고, 슬픔을 잊기 위해 일에만 매달렸고 결국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더하기

저 개인적으로는 애절한 러브스토리의 페드루 5세의 이야기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단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아버지인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를 가장 잘생긴 왕족으로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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