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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02. 2015

"두번 결혼했지만 처녀로 죽다"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딸 마르가레테가 쓴 묘비명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일명 "합스부르크의 황금의 신부"라고 일컬어지는 마리 드 부르고뉴와의 결혼으로 두명의 자녀를 얻습니다. 하지만 마리 드 부르고뉴의 때 이른 죽음은 황제를 "사랑하는 죽은 아내를 위해 시를 쓰고 살던" 낭만적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현실이랑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은법.

그가 아무리 시를 쓰고 살았어도, 가문과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과 자녀들의 결혼을 정략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딸


마리 드 부르고뉴와 막시밀리안 1세의 딸이었던 마르가레테는 어려서 프랑스 국왕과 약혼하게 됩니다. 이 상황은 미묘한 부르고뉴 공작령에 대한 프랑스 왕국의 반응때문이었죠. 루이 11세는 부르고뉴 공작령을 프랑스 국왕의 봉신국가로 묶어두려 노력했었죠. 그는 마리 드 부르고뉴를 자신의 며느리로 맞아서 부르고뉴를 프랑스 왕가에 편입시키려는 야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결국 마리 드 부르고뉴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과 결혼하므로써 그의 계획을 좌절시켰습니다.


이후 복잡한 정치상황은 결국 마리의 딸인 마르가레테가 루이 11세의 후계자와 결혼하고 지참금으로 프랑스가 원하던 영토를 가져가는 형태가 되었죠. 당시 전통대로 어린 마르가레테는 루이 11세의 궁정으로 보내져서 그곳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마르가레테가 프랑스에 도착한 직후 루이 11세가 사망했고 열세살의 샤를이 국왕 샤를 8세로 즉위합니다. 마르가레테는 결혼이 인정되는 나이가 될때까지 국왕의 약혼녀로 지냅니다. 하지만 결혼이 결정된 상황에서 마르가레테는 왕비처럼 대접받았을 것이었죠. 이때 마르가레테는 프랑스 궁정에서 많은 프랑스와 연결되는 왕녀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남편이 될 샤를 8세에 대해서 호의적 감정을 느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11살이 되던 해에 끝나게 됩니다. 샤를 8세는 브르타뉴 공작령의 상속녀였던 안 드 브르타뉴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마르가레테와의 약혼을 깹니다. 이 상황이 마르가레테에게 더 절망적이었던것은 안 드 브르타뉴가 마르가레테의 아버지였던 막시밀리안 1세와 약혼한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브르타뉴 공작 역시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길 원치 않았고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와 연합하기로 했던 것이었죠. 결국 이 상황은 샤를 8세가 브르타뉴를 무력으로 압박했으며 막시밀리안 1세가 손쓸사이도 없이 안 드 부르타뉴가 결국 샤를 8세와 결혼하게 되죠.


게다가 더 비참했던 사실은 마르가레테는 거의 인질처럼 프랑스 궁정에 남아서 아버지와 옛 약혼자가 조약을 새로 맺은 뒤에야 겨우 부르고뉴로 돌아갈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마르가레테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마르가레테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는 두 자녀를 정략결혼시킵니다. 프랑스에 대한 견제로 가톨릭 공동 군주의 두 자녀들과 자신의 두 자녀들을 결혼시키기로 한것이었죠. 마르가레테의 오빠인 필립과 가톨릭 공동 군주의 딸인 후아나가 결혼했고, 마르가레테는 후아나의 오빠이자 카스티야와 레온, 아라곤과 시칠리의 후계자였던 후안과 결혼이 결정됩니다.


1496년 마르가레테는 대리결혼을 치룬뒤 부르고뉴를 떠나 남편이 있는 에스파냐로 갑니다.  배를 타고 가던 마르가레테의 일행은 도착직전 심한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르가레테는 자신이 에스파냐에 도착하기 전에 배가 난파되어서 죽게 될것이라고 여겼었죠.

이때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마르가레테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묘비명을 써놓게 됩니다.

"두번이나 결혼했었던 헌신적인 신부였지만 죽을땐 처녀였던 Magot, 여기 잠들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마르가레테는 죽지 않았고 무사히 에스파냐에 도착해서 후안과 결혼하므로써 저 묘비명은 필요없게 됐다고 합니다.


더하기

마르가레테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던 남편 후안은 병약한 사람이었고 결혼 육개월만에 덜컥 사망합니다. 이때 마르가레테는 임신중이었는데 남편이 죽은후 아이도 사산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다시한번 사보이 공작과 결혼하는데 사보이 공작 역시 결혼 3년만에 사망합니다. 이때 마르가레테는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녀는 "더이상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이후 남편의 상복을 입고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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