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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09. 2015

18세기 영국의 오페라 전쟁!

헨델과 반 헨델의 세력 다툼... 승리는 과연 누구?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은 매우 뛰어난 음악가로 원래 독일 출신이었지만 영국에서 크게 성공합니다. 그는 원래 하노버의 선제후였던 게오르그 루드비히의 궁정에서 일했었지만 영국으로 직장을 옮겨버립니다. 그런데 전임 상사였던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덜컥 영국 국왕이 되어버려서 난처했다는데 그걸 만회하기 위해 수상음악을 작곡했대나 어쩐대나 라는 이야기가 있긴 합니다만, 사실상 조지 1세가 국왕이 되는 것은 거의 확정된 사실이었고 아마도 헨델 역시 이 승진한 상사를 따라 미리 영국에 갔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이를테면 계열사사장에서 회장으로 급 승진하는데 미리 홍보부장은 본사 홍보부로 보낸 것 정도?)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헨델은 오래도록 영국 왕실과 연연을 맺었고 영향력도 매우 컸으며 뛰어난 작곡가였기에 열광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승승장구 나날들은 헨델을 영국 음악계의 거물이자 동시에 "갑"으로 만들게 됩니다. 이런 헨델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게 되죠.


한편 영국의 조지 2세와 그의 아들인 웨일즈공 프레드릭은 사이가 나빴습니다. 왜 나빴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집안 내력입니다. 조지 1세도 그 아버지랑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조지 2세도 조지 1세와 사이가 극악이었고 뭐 그렇습니다. 어쨌든 아버지와 아들은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섰는데 영국의 애매한 정치 형태는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을 용납하게 만들죠. 보통 국왕인 아버지가 아들이 반항하면 가만두지 않지만 영국은 국왕의 정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었기에 아들이 반항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아들을 어쩌질 못한 것이었죠.


이런 상황은 음악계에서도 묘하게 돌아가게 되는데 웨일즈공 주변 인물들은 국왕과 그 주변 인물들에 안티였으며 이런 갈등 상황은 음악계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국왕의 지지를 받는 헨델에 대해 헨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웨일즈 공 중심으로 뭉치게 되죠.


그리고 1730년대, 드디어 반 헨델 측 사람들이 뭉쳐서 헨델에 반대하는 오페라단을 설립하면서 헨델 vs 반헨델의 오페라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헨델의 인프라 대부분이 반 헨델 측에 가입함으로써 헨델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헨델은 여전히 기반과 지지자들이 있었으며 또 뛰어난 작곡가였던 헨델의 음악을 무시할 수는 없었죠.


이에 반 헨델 측은 유럽에서 명성이 드높던 오페라 작곡가들을 초대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당대 인기 작곡가였던 포르포라였습니다. 사실 반 헨델 측이 포르포라를 초빙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습니다. 포르포라의 제자이자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파리넬리를 불러오기 위한 것이었죠. 이전에 헨델 역시 파리넬리를 초빙하려 했지만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스승인 포르포라와 세트로 엮으려 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것은 성공해서 파리넬리 역시 영국으로 오게 됩니다.


https://youtu.be/RSqBCFtBo90

이당시 상연된 포르포라의 오페라 Polifemo중 Alto Giove, 초연 당시 파리넬리가 불렀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헨델 역시 여러 자구책을 노력했는데 역시 당대 최고의 오페라 가수였던 카레스티니를 초빙했으며 오페라에 새로운 형식 등을 도입하면서 떨어져나간 인프라를 메꿔보려고 애를 썼었죠.


https://youtu.be/ZI6mCidnM5s

이 당시 상연된 헨델의 오페라 Ariodante 중 Scherza infida, 초연당시 카레스티니가 부른 노래


이런 상황에 제일 호강한 사람들은 바로 잉글랜드 상류사회였을 것입니다. 뛰어난 오페라들이 경쟁적으로 열렸으며 뛰어난 가수들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봤을 것입니다. 


경쟁은 치열했으며 두 세력을 누가 하나 끝장날 때까지 경쟁을 멈추지 않을듯했었죠.


이 오페라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누구냐고요

헨델도 그 반대 측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파리넬리"였죠. 파리넬리는 이전에도 이름이 높았지만 이때 명성은 극에 달합니다. 팬 중 한 명은 "One God, One Farinelli"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죠. 파리넬리는 출연료는 물론 팬들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았으며, 이런 명성으로 에스파냐 왕실의 전속 가수로 가면서 다른 카스트라토들과 다른 유복하고 편안한 만년을 누리기까지 합니다.


파리넬리,카를로 브로스키


그럼 헨델이나 반대세력은 어떻게 됐냐고요. 두 오페라단 모두 망했대나 어쩐대나...


더하기

헨델은 이후 오페라 보다 돈이 좀 덜 드는 "오라토리오"에 좀 더 집중했다고 하네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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