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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12. 2015

저 앨리스 말고 이 앨리스

빅토리아 여왕은 둘째딸이 태어났을때 여왕이 절대적 신임을 보냈던 신하중 한명인 멜버른 경이 제일 좋아했었던 이름인 "앨리스"라는 이름을 딸에게 붙여주었습니다.


남편인 헤센의 루드비히 4세와 함께 있는 영국의 앨리스 공주


그리고 이 앨리스라는 이름은 빅토리아 여왕의 몇몇 자손들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첫번째 앨리스는 앨리스 공주의 막내딸인 헤센의 알릭스였습니다. 공주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헤센 지방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체"라고 발음하는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막내딸의 이름을 "Alix"라고 짓는다고 이야기했었죠.

두번째 앨리스는 여왕의 막내아들인 레오폴드의 딸인 알바니의 앨리스였습니다. 레오폴드는 늘 다정했던 누나 앨리스를 잊지 않았고 딸이 태어났을때 죽은 누나의 이름을 붙이길 바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앨리스는 앨리스 공주의 외손녀였던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였습니다. 여왕은 자신의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가 자신이 태어난 침대에서 딸을 낳은것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었다고 합니다. 또 여왕의 장녀인 프린세스 로열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첫손녀가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동생 앨리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했었죠. 어쨌든 여왕은 이 아이가 외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앨리스"라고 불릴거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바로 두번째 앨리스와 세번째 앨리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재미난것은 두번째 앨리스와 세번째 앨리스는 세살차이였지만 생일이 똑같았었죠. 두번째 앨리스가 세번째 앨리스보다 세살 많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어린시절 전혀 다른 삶을 살았었습니다.


알바니의 앨리스는 어린시절 아버지인 레오폴드가 사망했습니다. 사실 레오폴드는 혈우병환자로 모두들 언제 죽을지 몰라서 걱정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왕은 이런 아들을 과보호했는데 이때문에 레오폴드는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두 자녀중 한명이 됩니다. (다른 한명은 아가일 공작부인이 되는 루이즈) 레오폴드는 혈우병 때문에 입대할수 없었고, 결국 어머니에게서 도망가는 것은 결혼밖에 없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병때문에 결혼이 쉽지 않았는데 왠만한 가문에서는 딸을 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그는 영국의 여왕의 아들이었고  대가문과 결혼하는데 열을 올리던 발덱-피르몬트 가문의 딸인 헬레나와 결혼할수 있었습니다만 그는 아내가 둘째아이를 임신했을때 프랑스로 요양갔다가 그곳에서 사고로 다치게 되었고 결국 사망했죠.

아버지가 죽은후 알바니의 앨리스는 어머니와 남동생 찰스 에드워드와 함께 시골에서 조용히 살았습니다. 과부된 헬레나는 나서는것을 원치 않았으며 아이들과 함께 궁정에서 떨어져서 조용히 지내길 바랬다고 합니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로 앨리스는 특별한 행사나 명절때면 여왕에게 가긴했지만 그냥 멀리 떨어져있는 손녀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알바니의 앨리스, 결혼후


반면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늘 빅토리아 여왕 곁에 머물렀었습니다.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여왕의 방계 후손이긴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의 제일 사랑한 손녀라고 평가받던 인물이었으며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가 죽은후에는 여왕에게는 딸을 대신하는 외손녀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유대감은 헤센의 빅토리아가 오촌이었던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와 결혼하면서 더해지게 됩니다. 루드비히는 독일 출신이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영국 해군으로 영국에서 살고 있었고 빅토리아는 그와 결혼하면서 결국 영국에서 살게 되죠. 여왕은 예뻐하는 외손녀를 늘 자주 불렀는데, 빅토리아와 루드비히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기에 늘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다녔고 결국 여왕 역시 증손주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또 여왕과 늘 붙어다니던 베아트리스 공주 역시 바텐베르크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므로써 조카와 동서가 되는 기묘한 관계를 형성했고, 베아트리스 공주의 아이들과 헤센의 빅토리아의 아이들은 사촌관계로 여왕과 더 자주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죠. 결국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여왕에게 더 친숙한 아이가 됩니다. 게다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예쁜아이였으며 매우 얌전한 아이로 빅토리아 여왕이 제일 좋아하는 타입의 아이였다고 합니다. (예쁘고 조용하고 고분고분한 아이)


부모와 동생 루이즈와 함께 있는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결국 빅토리아 여왕은 손녀인 알바니의 앨리스보다 증손녀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에 더 익숙해졌으며 이런 상황은 사람들의 혼란을 초래하는 한 사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893년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자 영국의 국왕이 될 웨일즈의 조지가 테크의 메리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는 10명이었는데 여왕이 언급한 신부 들러리들은 전부 여왕의 손녀들 이름이었죠.


빅토리아 멜리타,알렉산드라,베아트리스(여왕의 둘째아들인 앨프러드의 딸들),모드와 빅토리아(신랑 여동생들),마거릿과 패트리샤(여왕의 셋째아들인 아서의 딸들),헬레나 빅토리아(여왕의 셋째딸인 헬레나의 딸)와 에나(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의 딸)과  앨리스였습니다.


누가봐도 마지막의 앨리스는 여왕의 막내아들의 딸인 알바니의 앨리스였습니다. 이때문에 떨어져 살고 있었던 알바니의 앨리스에게 "신부 들러리"로 오라는 메세지가 전해졌고. 어린 공주는 아마도 이런 큰 행사에 들러리로 초대되는것에 매우 흥분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모두가 경악할만한 이야기를 했다. '앤트 앨리스의 손녀인 예쁜 앨리스 바텐베르크가 신부들러리로 참석할거다'라고 알렸죠. 그리고 여왕은 '그애는 매우 사랑스럽고 8살이 되었단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왕은  손녀인 앨리스가 아니라 증손녀인 앨리스를 이야기한것이었죠. 여왕의 말을 거스를수 없었던 사람들은 결국 알바니의 앨리스에게 "신부 들러리"가 아니라는 메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알바니의 앨리스는 훗날 이 사건에 대해서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예쁜 아이였지만 나는 이때 실망감을 감출수가 없었다"라고 이야기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지 5세의 결혼식,오른쪽 앞쪽에 있는 두소녀가 바텐베르크 가문의 아이들입니다. 앞쪽이 에나 뒷쪽이 앨리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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