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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5. 2015

스웨덴의 왕위 계승은 누구에게로...

자유주의 시대의 도래

군주제를 하고 있는 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후계자 문제 일 것입니다. 후계자가 없다면 아무리 나라를 부강하게 해놔도 소용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스웨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도 문제이긴 했습니다. 칼 12세와 싸웠던 표트르 대제도 죽기 직전까지 후계자를 내세우지 못했고 그 결과 러시아도 복잡한 문제에 빠져들게 됩니다.


스웨덴 역시 같은 상황에 직면합니다. 칼 12세는 어려서부터 전장에서 살았고 그 결과 결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군대에 열광하신 나머지 후계자 문제에서 자신이 결혼해서 후계자를 얻는 것보다는 누나나 동생들에게로 후계자 문제를 떠 넘겨버리게 되죠.


스웨덴의 칼 12세


칼 12세가 즉위한 뒤, 그의 누나인 헤드빅 소피아가 제1왕위 계승자로 생각됩니다. 헤드빅 소피아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촌이었던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 프리드리히 4세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덴마크를 견제하려는 정책이었죠. 하지만 헤드빅 소피아는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사촌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즐거운 삶"을 살았던 프리드리히 4세는 스웨덴에 와서 칼 12세와 죽이 맞아서 술 마시고 놀러 다니고 하는 등의 일을 좀했었기에 더 싫어했을듯합니다.


헤드빅 소피아는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로써의 자신의 지위를 좋아했으며 이 때문에 자주 남편의 궁정이 아니라 스웨덴으로 와있고는 했다고 합니다. 헤드빅 소피아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카를 프리드리히를 낳았었습니다.


스웨덴의 헤드빅 소피아


사실 칼 12세가 결혼을 거부하면서 칼 12세의 누이들인 헤드빅 소피아와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중요한 왕위 계승자로 여겨지게 됩니다. 비록 헤드빅 소피아가 왕위 계승자로 거의 확실해 보였지만 울리카 엘레오노라도 점차 부상하게 되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혼담을 이어가게 됩니다만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언니와는 달리 좀 오래도록 미혼으로 지내게 되죠.


1708년 언니인 헤드빅 소피아가 사망하면서, 왕위 계승자로서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입지가 강화됩니다. 헤드빅 소피아는 아들인 카를 프리드리히가 있었지만 아이는 아직 어렸으며 또 정치적 문제 역시 좀 복잡하게 흘러가죠. 울리카 엘레오노라와의 결혼은 당대 미혼 왕족들이 노려볼만한 야망 중 하나였었죠.


1710년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와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상처한 홀아비였는데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그에게 반해버리게 됩니다.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는 좀 더 정치적 목적으로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결혼했습니다. 바로 스웨덴 왕위를 노린 것이었죠.


이런 상황은 결국 스웨덴에서 칼 12세의 조카였던 홀슈타인-고토 로프의 카를 프리드리히와 칼 12세의 누이였던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만들죠. 카를 프리드리히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고토로프 파"라고 불렀고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헤센 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울리카 엘레오노라


이런 갈등 상황은 칼 12세가 죽으면서 극에 달하게 됩니다. 혈통상으로 볼 때 카를 프리드리히와 울리카 엘레오노라 둘 중 한 명이 국왕이 되는 것이 맞았습니다만, 복잡한 상속법에 따르면 둘다에게도 계승권이 없는 상황이었죠. 스웨덴은 "여왕"을 인정하는 나라였습니다만, 당시 스웨덴 왕가였던 비텔스바흐 가문은 여성의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텔스바흐 가문의 상속법에 따르면 카를 프리드리히는 물론 울리카 엘레오노라에게도 상속권이 없었으며 아마도 제일 가까운 다른 비텔스바흐 가문의 남성에게 상속권이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스웨덴 귀족들은 듣도보도 못한 외국 왕족이 와서 국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자신과 조카의 계승에 대해서 의회가 결정하도록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서 둘 다 계승 법에 따르면 자격이 없기에 스웨덴 의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의회는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스웨덴의 여왕으로 선출합니다.


이 상황은 결국 왕권이 아니라 의회권력 다시 말해서 귀족 권력이 왕권보다 더 강해지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후 구스타프 3세 시절이 될 때까지 국왕은 의회의 눈치를 보게 되고, 스웨덴의 귀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죠. 이 시대를 스웨덴에서는 "자유주의 시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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