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중혼보다 죄악이다!

가벼운 역사 이야기 두번째

16세기 독일의 헤센 지방을 통치하던 군주는 "필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보통은 "헤센의 란트 그라프" 필립 1세라고 부르는 인물이죠. (란트그라프가 뭐냐구요? 그냥 헤센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의 칭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왕이나 황제 같이 말이죠.)

어느 때나 안 그러겠습니까만, 16세기 독일은 매우 혼란한 시기중 하나였습니다. 왜냐구요?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시기였거든요. 이 헤센의 군주였던 필립 1세는 루터를 지지하던 인물 중 하나로 자신의 영지 내에서 수도원과 교회를 신교로 바꾸는 등의 일을 했었기에 종교개혁 초기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헤센의 란트그라프, 필립 1세

하지만 이런 중요한 인물이 큰 사고를 치게 되죠. 무슨 사고냐구요? 저기 제목과 관계된 사고를 친 거죠.

1539년 37살의 필립은 자신보다 열여덟 살 어린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궁정에서 시녀로 일하던 "마르가레테 폰 데어 잘레"라는 이름의 여성이었죠. (서양에서 말하는 시녀 -lady-in-wait-는 궁정에서 지위를 얻는 것으로 귀족 여성들이 하던 일로 명예로운 일이었다죠. 더불어 궁정에서 연줄을 쌓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마르가레테가 매우 아름다웠는지 아니면 필립의 취향이었는지 몰라도 필립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하게 되죠.

마르가레테 폰 데어 잘레, 디이츠 백작부인

필립과 마르가레테의 결혼을 방해하는 것은 마르가레테의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은 아니었습니다.(이때 유럽 쪽 군주들은 비슷한 신분의 여성과 결혼해야 했거든요. 아니면 일명 "귀천상혼"이 되어서 자녀의 상속권을 박탈당하게 된다죠.) 왜냐면 필립은 이미 후계자가 될 아들이 있었거든요. 문제는 그 후계자의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는 것입니다.

필립은 정치적 목적으로 작센 지방을 통치하던 군주의 딸인 크리스티네와 결혼했었습니다. 정략결혼이었기에 결혼생활은 서로에게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었죠. 그리고 필립이 마르가레테를 만난 그 시점에서도 크리스티네는 필립의 아내이자 헤센의 통치 군주의 아내로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필립은 유부남이었음에도 다시 한번 더 결혼하길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센의 크리스티네, 헤센의 란트그라핀

보통 이런 경우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아내를 부정으로 몰아세우거나 아내가 죽길 기다리거나 합니다.(물론 죽음이 자연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필립은 정치적 목적으로 결혼했기에 아내와 이혼하거나 아내를 부정으로 몰아갈 수는 없었던듯합니다. 또 급한 마음과 양심에 따라 아내의 죽음을 기다리는 방법도 적합하지 못하다고 여겼던듯합니다.

결국 필립은 "중혼"을 선택하게 됩니다.(중혼이라는 것은 법적인 아내가 있음에도 이혼 등을 하지 않고 또 결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립은 종교적 관점을 위해 루터에게 자문을 구하게 됩니다. 필립은 루터에게 "이혼과 중혼 중 어느 것이 더 죄악인가?"라고 물었으며 이에 대해 루터는 "이혼이 중혼보다 죄악이다"라는 답을 했다고 합니다.

마르틴 루터

물론 루터가 필립의 중혼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루터의 답변을 들은 필립은 엄청나게 가벼운 마음으로 마르가레테와 다시 한번 더 결혼했을 것입니다.

마르가레테는 필립과 결혼한 뒤 "디이츠 백작 부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필립 첫 번째 아내인 작센의 크리스티네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는데, 그녀는 필립의 행동을 남편으로써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녀의 군주로써 행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 상황은 종교개혁 초기 오점으로 남게 됩니다. 필립은 적극적으로 종교개혁을 지지하던 인물이었는데 이런 중혼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죠.

더하기

필립과 작센의 크리스티네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후계자를 낳는 의무는 매우 충실해서 둘 사이에 모두 10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하네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