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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26. 2015

아빠도,엄마도,형제도,자매도 다 도움이 안돼!

가벼운 역사 이야기 세번째

13세기 잉글랜드를 통치했던 국왕은 헨리 3세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강력한 통치자였던 할아버지 헨리 2세의 이름을 딴것이었죠.  하지만 같은 이름의 강력한 군주였던 할아버지와 달리 그는 귀족들과 프랑스에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였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보다는 좀 행복했을듯합니다. 적어도 마누라랑  치고받고 싸우진 않았으니까요.(하지만 손자인 에드워드 2세는.....) 또 자식들이 하나같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던 헨리 2세와 달리 헨리 3세는 아들이 에드워드 1세였으니 말입니다.


잉글랜드의 헨리3세


헨리 3세의 아버지였던 존은 헨리 3세에게 반란의 무리로 가득한 나라를 물려줬었습니다. 게다가 헨리 3세가 미성년일 때 사망함으로써 왕권을 확립하는데 엄청나게 고생하게 만들었죠.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죽기 전 괜찮은 섭정단을 물려줬다는 정도일듯합니다.


잉글랜드의 존, 헨리 3세의 아버지


헨리 3세의 어머니였던 이자벨 당굴렘 역시 헨리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세의 헬렌"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이자벨은 자신의 장녀인 조앤의 약혼자이자 자신의 옛 약혼자의 아들인 뤼지냥 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해버립니다. 뤼지냥 가문이 등을 돌림으로써 존이 프랑스에서 엄청나게 힘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결혼을 통해서 잉글랜드가 프랑스와의 투쟁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볼까 싶었지만, 이득은 무슨 이득... 엄마 이자벨은 그저 자신의 이익만 챙길 뿐이었죠.


이사벨 당굴렘


헨리 3세의 동생인 콘웰 백작 리처드는 잉글랜드는 물론 당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였었습니다. 그가 부유하게 된 것은 형인 헨리 3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죠. 하지만 리처드는 형에게 반기를 드는 귀족들을 은근히 지지하는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결정적이었던 시몽 드 몽포르를 지지하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콘웰 백작 리처드



헨리 3세는 일명 "프로방스 자매들"이라고 불렸던 프로방스 백작의 딸 중 하나였던 엘레오노르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충실했고 후계자가 될 자녀들도 낳아주었지만 결정적으로 친정식구들을 한가득 잉글랜드로 데려와서 잉글랜드에 자리 잡게 지원해줬고 이것은 안 그래도 불만 많은 잉글랜드 귀족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일이었죠.


헨리 3세와 함께 있는 엘레오노르


헨리 3세에게 가장 도움이 안됐던 인물은 바로 여동생인 엘리노어였습니다. 엘리노어는 10대에 과부가 되었고, 남편이 죽은 뒤 수녀가 되기로 서원했었습니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그만 6대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와 눈이 맞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엘리노어가 시몽 드 몽포르와 바로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게 됩니다. 서원한 수녀가 결혼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였고 교회에서 그다지 반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둘의 결혼을 지지한 유일한 인물이 바로 헨리 3세였죠. 결국 시몽 드 몽포르가 속죄를 위해 순례를 하는 것으로 보속하고 둘은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시몽 드 몽포르는 반란을 일으켜서 헨리 3세를 거의 쫓아내다시피 하고 자신이 권력을 휘둘렀었죠.


엘리노어


그나마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기사이자 군주가 될 헨리 3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1세 덕분이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더하기

반란 진압은 기본이요 십자군 원정까지 참전했었던 에드워드 1세는 아마 리처드 1세 이후 잉글랜드의 기사 만렙 군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리처드 1세는 기사 만렙이었지만 군주 만렙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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