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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27. 2015

그 Queen이 그 Queen이 아닌데...

가벼운 역사 이야기 네번째

20세기 초 영국의 잘 나가던 호화 유람선 회사였던 쿤라드 사에서는 거대한 호화 유람선을 만들 계획을 하게 됩니다. 1930년대 경제 불황이 일어나면서 회사가 어려워졌지만 영국 정부의 도움으로 배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쿤라드 사에서는 회사를 대표하게 될 이 배의 이름에 대해서 오래도록 언급을 자재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배의 이름에 대해서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고 여러 가지 추측을 했었습니다. 그중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아마도 쿤라드 사에서 이 배 이름을 "퀸 빅토리아 Queen Victoria"라고 이름 붙일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영국 정부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이전 쿤라드 사의 유람선중 많은 배들의 이름에 -ia형태의 여성형 이름이 붙여져 왔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결국 붙여진 이 배의 이름은 바로 "퀸 메리 Queen Mary"였습니다.

이 것은 당시 영국 왕비였던 메리 왕비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다른 이름에 사람들은 왜 메리 왕비의 이름이 붙여졌는가 궁금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죠.


확인된 사실을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배 이름이 퀸 메리가 된 것은 순전히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5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쿤라드 사의 사장은 다른 사람의 예상대로 배의 이름을 퀸 빅토리아로 지으려고 했고 이를 허락받기 위해 조지 5세를 알현하러 갔다고 합니다. 쿤라드 사의 사장은 국왕에게 배 이름으로 "Great Queen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Great Queen이란 조지 5세의 할머니였던 빅토리아 여왕을 의미했죠. 하지만 이에 대해서 조지 5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가 기뻐할 걸세"


이 말을 들은 쿤라드 사의 사장은 아무 말없이 배 이름을 퀸 메리로 붙였대나  어쩐대나...

 


더하기

조지 5세와 메리 왕비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었기에 20세기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부부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둘의 관계는 매우 의례적으로 보였고 이런 상황은 부부가 매우 차가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둘이 결혼할 때 서로 결혼하고 싶어 했던 사람과 깨진 뒤였기에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을듯합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매우 아끼는 사이였으며 심지어 조지 5세는 Great Queen이라는 말에 할머니가 아니라 아내를 떠올릴 만큼 팔불출일 수도 있습니다.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결혼식 사진


더하기 둘

쿤라드 사는 재정 위기를 겪은 후 결국 미국인 소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어쨌든 이 회사는 여전히 호화 유람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0년대 드디어 "퀸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배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영국의 여왕 이름을 썼기에 배의 대모는 왕실 인물이 했습니다. 누구냐고요. 바로 "콘웰 공작부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 같은 사람들은 "아니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쓰는 배에 감히 콘웰 공작 부인을 대모로 부르다니"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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