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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Dec 14. 2015

이탈리아에 가면 이탈리아법을 따라야하는법

베르나도트의 이탈리아 방면군 적응기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는 1797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방면군을 지원할 보충병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가게 됩니다. 알프스 산을 넘는 험난한 길을 통해 나폴레옹에게 갔었죠.


베르나도트가 도착한 뒤인 1797년 3월경 오스트리아는 다시 이탈리아를 공격했고 나폴레옹은 뛰어난 전술로 이 오스트리아군을 막아냅니다. 그리고 그의 선봉은 베르나도트가 맡았었죠.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프랑스 장군


이탈리아 방면군은 사실 베르나도트가 있던 플랑드르와 독일 전선에 있던 부대들보다는 좀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전까지 프랑스 정부로 부터 거의 지원을 못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무능한 총재정부는 전쟁을 지원하지 않고 군인들에게 들들들 볶아댄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나마 주전선이었던 플랑드르나 독일 전선에는 지원이 가는 편이긴했습니다. 그래도 지원이 늘 부족해서 가정집의 문짝 뜯어서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들정도이긴했었죠.


주전선이었던 플랑드르 전선쪽도 이모양이었는데 나폴레옹이 재화를 보내오기 전의 이탈리아 전선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때문에 나폴레옹은 부하들에게 독특한 보상방법을 지원해줬습니다.

나폴레옹은 부하들에게 도시 하나씩을 지정해서 "약탈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약탈을 해도 되고 그곳 주민들이랑 합의를 봐서 돈을 받아내도 되는 뭐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죠.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나폴레옹


문제는 베르나도트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약탈이야 말로 군기가 헤이해졌을때나 이뤄지는 것이라 여겼었죠. 그리고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이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배우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 휘하로 뮈라를 보냈었습니다. "선봉중 선봉"으로 손색이 없던 뮈라를 선봉을 맡았던 베르나도트에게 보낸것이었죠. 그리고 뮈라는 도시 하나를 점령하게 해달라고 베르나도트에게 청을 합니다. 위치상 멀지 않았기에 베르나도트는 이를 승락했는데 뮈라는 이곳에 가서 전리품을 휩쓸어 왔습니다. 문제는 이 도시는 나폴레옹이 다른 장군에게 "약탈"하도록 허락한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선수를 뺏긴 장군은 열 받았고 이것이 베르나도트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베르나도트에게 항의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베르나도트에게 약탈이라는것 자체가 놀랄일이었죠. 그는 뮈라와 항의한 장군 둘다를 체포하게 하죠. 하지만 곧 베르나도트는 이것이 나폴레옹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뮈라, 당대 최고 미남--;;;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법...

군율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베르나도트였지만 이탈리아 방면군에서 있으면서 그는 나폴레옹의 방식을 따르게 됩니다. 수은광산을 점령했을때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와 그의 장군들에게 그 수익을 나눠가져도 된다고 이야기했었죠. 베르나도트와 그의 장군들은 이 수익을 나눠가졌습니다. 

물론 후에 탈레랑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어쩔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의 뛰어난 점을 잘 배워서 나중에 스웨덴에 가서 잘 써먹게 되죠.


자료출처

Bernadotte: the first phase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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