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Florence Foster Jenkins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습니다. 결혼전 내시나 플로렌스 포스터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이 여성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으며 역시 펜실베니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었죠. 그녀는 발음하기 어려운 첫 이름 대신 중간 이름인 "플로렌스"라는 이름을 쓰고 살았다고 합니다.
당대 미국 상류층 여성들처럼 플로렌스 역시 어린시절 여러가지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음악에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백악관에 가서 연주할 정도의 촉망받는 피아노 영재였었다고 합니다.
플로렌스는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플로렌스의 아버지는 딸의 유학비용을 대주지 않았었죠. 이에 화가난 플로렌스는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인 손튼 젠킨스와 결혼해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홧김에 한 결정은 그녀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남편과 이혼후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피아노 교습을 하면서 적당히 살았었죠. 비록 남편과 헤어졌지만 그녀는 플로렌스 포스터 잰젠스라는 이름으로 살았었습니다.
1909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상속받은 돈으로 그녀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데 수많은 여성 클럽을 만들었었죠. 또한 그동안 못했던 음악 공부를 다시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음악 공부가 그녀가 재능있다고 여겨졌었던 피아노가 아니라 성악이었다는 것입니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는 음정,박자등이 하나도 맞지 않는 전형적인 음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킨것은 질병을 고치기 위해 사용한 수은 때문에 중추신경게에 이상이 와서 더 악화 되었었습니다. 결혼후 그녀는 아마도 남편으로부터 매독을 옮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전까지 매독 치료에 수은이 사용되었는데 수은은 중추신경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이었죠.
하지만 이런 그녀가 가수로 활동할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많은 재산 때문이었습니다. 플로렌스에게는 언니 한명만 있었는데 언니도 8살때 사망했었기에 부모의 재산은 모두 플로렌스가 상속받았았죠. 이때문에 플로렌스는 대중앞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클럽에서 자신이 초대한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를수 있었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플로렌스의 노래를 비평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죠.
이런 작은 살롱 음악을 계속하면서, 플로렌스의 유명세는 커지게 됩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모임이나 자신이 초대한 사람들 앞에서만 노래불렀기에 그랬었을 듯합니다.결국 대중은 음치지만 끊임없이 노래부르는 플로렌스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했죠.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못부르는가 정도의 호기심이었을 것입니다.
대중의 요구에도 플로렌스는 자신만의 공연을 했었습니다만 죽기 직전에 결국 대중에게 자신의 노래를 공개했으며 음반도 녹음했었습니다.
노래가 어땠냐구요...한번 들어보세요....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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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5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 Marguerite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의 삶을 각색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수 없는 비밀"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나 보네요.
http://tvpot.daum.net/v/v4362NNZwHapdkEiVZop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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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까 헐리우드쪽에서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고 하네요.
아마도 이 영화는 연극으로 만들어진 대본이 있는데 그 연극을 바탕으로 하는 내용일듯합니다. (저도 연극이 있다는것만 봤거든요.) 이쪽은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가 나온다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