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Apr 04. 2016

우리의 왕은 바다 건너에 있어!

명예혁명이후 스코틀랜드에서 건배를 한다면?

영국의 역사에서는 여러 중요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명예혁명일 것입니다. 이 사건이후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정식으로 합병되었고 현재의 영국이라고 불리는 UK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명예혁명은 말 그대로 피를 흘리지 않고 일어난 혁명이라는 의미여서 명예혁명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잉글랜드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라 뭐랄까 좀 어폐가 있긴 합니다만 뭐 잉글랜드 주도로 통합된걸 어쩌겠습니까 


명예혁명이 일어난 것은 제임스 2세 시기였습니다. 이때 국왕 제임스 2세와 의회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었는데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죠.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는 개신교의 나라였으며 의회를 구성하는 귀족들 대부분이 개신교도였습니다. 반면 제임스 2세는 가톨릭 교도였으며 이런 상황은 국왕과 의회의 갈등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이 겉으로 표출된것은 제임스 2세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였습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신교도였던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와 앤이 왕위계승서열 1,2위였지만 이제는 그 딸들이 아니라 가톨릭으로 성장할 제임스 2세의 아들이 국왕이 될 것이었고, 이런 상황은 귀족들의 불만을 폭발하게 만드는 게기가 됩니다.


잉글랜드의 제임스2세,스코틀랜드의 제임스 7세


의회는 제임스 2세의 사위이자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남편이었던 오라녜공 빌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후에 영국의 국왕 윌리엄 3세가 되는 빌렘은 정치적으로 매우 노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뒤를 이었는데, 오라녜 가문의 통치를 반기지 않던 네덜란드 귀족들은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빌렘은 자신의 정적들을 몰락시켰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야심찬 인물이었던 윌리엄 3세가 의회의 청을 마다할리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 메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다믄 명분으로 함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갔었습니다. 런던 앞 바다에 들어찬 네덜란드 전함들을 본 잉글랜드 사람들은 경악과 기쁨이 교차했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2세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기뻤던 반면, 제임스 2세의 지지자들은 경악을 표했죠.


오라녜 공 빌렘 3세,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2세


사위의 함대를 본 제임스 2세는 결정을 내려야했습니다. 사위에 대항해서 싸워야할지 아니면 왕위를 포기하고 떠나야할지를 말입니다. 그 역시 아버지 찰스 1세가 죽고 오래도록 왕가가 망명생활을 해야했던 내전을 겪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전을 피하기 위해 망명하는 길을 택합니다. 오라녜공 역시 장인의 결정을 위해 천천히 군대를 이동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명예혁명이 일어났고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즉위하게 됩니다.


메리와 윌리엄


하지만 이들을 다 반긴것은 아닙니다. 스코틀랜드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당한 국왕이었던 스튜어트 가문의 국왕이 잉글랜드 의회에서 쫓겨난것이었기에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스튜어트 가문의 국왕을 모셔오기 위해 봉기를 했었죠. 물론 윌리엄 3세에 의해서 진압되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계속적으로 제임스 2세와 그 후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자코바이트(Jacobite)라고 불렀습니다. 제임스라는 이름의 라틴어명이 Jacob이었던 관계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쉽게 말하면 "제임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정도의 의미인 것이죠. 이들은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스튜어트 가문을 지지했는데 조지 2세 시절에도 스튜어트 가문 사람들을 지지해서 반란을 일으킬 정도였었죠.


컬로든 전투, 1745년


그리고 이 자코바이트들은 국왕을 위해 건배를 할때 The King over the water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국왕은 잉글랜드 국왕이 아니라 바다건너에 있는 그 누군가라는 의미였었죠.


19세기 그려진 자코바이트의 모습


더하기

제임스 2세의 직계가 단절된뒤 자코바이트들 역시 점차 세력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잉글랜드 국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톨릭 배제 원칙을 거부하고 왕위계승권을 이어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생각하는 왕위계승자의 권리는 유럽의 여러 왕가로 이어져서 현재는 바이에른 가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군주에게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만약 자코바이트들이 아직도 있다면 여전히 The King over the water라고 건배해야하네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