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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y 16. 2016

난 이 결혼 반댈세!

빅토리아 여왕과 외손녀인 헤센의 엘리자베트

헤센 대공가문은 유럽의 오래된 통치가문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헤센 대공가문이 중요하게 된것은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였고, 특히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가 이 가문 출신이 되면서 외굑적으로 중요한 곳중 하나가 됩니다. 이후 이런 외교적으로 중요한 입장은 다른 유럽 왕가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는데 특히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딸인 앨리스 공주가 대공의 후계자와 결혼하면서 러시아는 물론 영국과도 연결고리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65년 헤센 대공가문 사람들,가운데가 마리야 황후, 맨오른쪽이 앨리스 공주,맨 왼쪽이 바텐베르크공비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딸인 앨리스 공주는 헤센 대공가문의 후계자와 결혼했으며 다섯딸과 두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에 나타나는 유전병인 혈우병 보인자였으며 이때문에 둘째아들이 혈우병이었으며 어린나이에 혈우병으로 사망합니다. 이후 앨리스 공주는 가족들이 모두 디프테리아에 걸렸을때 가족 모두를 돌봤지만 결국 막내딸을 잃었고 가족들이 회복되던 중에 자신이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서 사망하게 됩니다.


앨리스가 죽은뒤, 빅토리아 여왕과 앨리스의 남편인 헤센의 대공 루드 비히 4세와 살아남은 다섯아이들


이 앨리스 공주의 살아남은 네딸들중 둘째딸이자 "엘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엘리자베트 대공녀는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상냥했으며 분위기 있는 여성으로, 대공녀를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늘 황홀한 표현을 사용하고는 했었습니다. 그녀에게 관심있는 왕족들이 많았는데, 한때 이종사촌이었던 독일의 빌헬름(후에 황제 빌헬름 2세)이 엘라에게 청혼을 했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조용한 삶을 원했던 엘라는 황후라는 지위를 받아들일수 없어서 청혼을 거절했었는데, 빌헬름은 평생 엘라의 사진을 간직했으며 심지어 훗날 엘라가 러시아에서 위험에 처했을때 어떻게든 엘라를 무사하게 데려오려고 노력했던 인물중 하나로 알려져있을 정도였습니다.


헤센의 엘리자베트 대공녀 "엘라" 후에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엘라의 이름인 "엘리자베트"는 친할머니의 이름을 딴 것이긴 했지만 사실 가문의 조상이었던 성 엘리자베트를 기리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중세 헝가리의 공주로 튀링겐의 란트그라프와 결혼했었던 성 엘리자베트는 헤센 대공가문의 직계 조상중 한명이었습니다. 헤센 대공령은 튀링겐의 란트그라프가 통치하던 영지중 일부였으며 복잡한 상속문제를 거쳐서 성 엘리자베트의 외손자가 헤센 가문의 시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성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땄던 엘라는 그에 걸맞게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신앙심은 그녀가 자신의 남편감을 만나는데 영향을 줍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알렉산드르 2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다섯째아들로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자주 왔었습니다. 그 외가가 바로 헤센 대공령의 수도였던 다름슈타트였습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는 공식적으로는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2세와 그의 아내인 바덴의 빌헬미네 대공비의 딸이었고 결혼후 자주 친정으로 와서 오빠들을 만나고는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러시아 황실가족들이 자주 다름슈타트에 오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어머니를 사랑했던 세르게이 대공은 늘 어머니와 함께 다름슈타트에 왔었습니다.


마리야 황후는 엘라의 아버지의 고모로 세르게이 대공과 엘라의 아버지가 사촌관계로 엘라와 세르게이는 오촌관계였습니다. 엘라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신앙심이 깊었던 잘생긴 세르게이 대공에게 호감을 가졌었습니다. 세르게이 대공 역시 신앙심 깊고 얌전하며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엘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세르게이 대공


둘의 결혼을 반대할만한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습니다. 세르게이 대공은 당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러시아 황족중 한명이었으며, 엘라는 헤센 가문 출신에 영국의 빅토이아 여왕의 외손녀였기에 외교적으로나 신분상으로나 어떤 왕족과도 혼담이 진행되어도 손색이 없던 신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엘라는 아름답기까지 했었죠.


하지만 양가를 통틀어서 이 결혼을 반대 할 사람이 딱 한사람 있었습니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사람이기도 했구요. 바로 엘라의 외할머니였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와의 혼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여러가지 문제때문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여왕은 테러가 점차 심해지던 러시아 상황을 우려했으며, 정치적 혼란이 왕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것을 우려했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영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서 자주 영국으로 놀러오던 사랑하는 외손녀가 러시아로 시집간뒤 자신을 만나러 영국에 못 올것을 걱정했었습니다.

또 여왕의 개인적인 편견 역시 러시아 왕족과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여왕의 이모중 한명이 러시아의 대공과 결혼했었지만 결혼생활이 매우 불행했었습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영국 왕족들은 러시아 황족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이후 엄청나게 싫어했었는데 여왕의 백부들은 러시아 황족들을 다 싫어했고 아마도 빅토리아 여왕 역시 이런 성향을 어느정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여왕의 둘째며느리가 알렉산드르 2세의 딸로 세르게이 대공의 누나였는데 그녀는 영국 사교계가 맞지 않았고, 영국에서 사는것을 싫어했으며 여왕은 이런 며느리를 못마땅해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둘째며느리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함께 있는 빅토리아 여왕


어쨌든 여왕이 외손녀가 러시아 대공과 결혼한다면 반대할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라는 언니인 빅토리아의 결혼때 외할머니가 어떻게 언니의 결혼을 반대했는지 봤었습니다. 빅토리아의 결혼은 아버지도 반대했었지만 사실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결국 허락할 아버지가 아니라 외할머니를 설득하는 것이 문제였고,빅토리아는 일년이나 약혼기간을 두면서 겨우 설득해서 결혼할수 있었습니다.


이런 언니를 본 엘라는 외할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알렉세이와의 약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해버립니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은 이에 대해서 매우 화를 냈는데 이미 약혼해버린 외손녀의 상황에 대해서 어쩔수 없었다고 합니다.


엘라와 세르게이


더하기

여왕은 엘라가 결혼한 뒤에도 세르게이 대공을 싫어했는데, 엘라의 조카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의 세례식때 엘라가 대모가 되었고 거기 참석하는것을 기뻐했다고 합니다. 여왕은 세르게이가 바빠서 세례식때 안오길 바랬지만 결국 세례식에 세르게이가 왔으며 여왕은 그를 봐야했었죠. 엘라의 언니이자 아이의 어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외할머니에게 "세르게이와 멀리 떨어져 앉게 해드릴께요"라고 했다지만 정작 식사때 세르게이는 여왕 옆자리에 앉았고 여왕이 심기 불편해했다고 합니다.


더하기 둘

https://www.royalcollection.org.uk/collection/400500/the-family-of-queen-victoria-in-1887

이 그림은 여왕의 골든 주빌리를 기념으로 살아있는 여왕의 후손들과 그 배우자들이 모여있는 것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재미난것은 그림에서 여왕에게서 제일 멀리 있는 남자가 바로 세르게이 대공이라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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