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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May 30. 2016

내가 대모니까 애 이름은 내 맘대로

빅토리아 여왕의 아이 이름 테클걸기

세례식때 대부였던 백부 조지 4세의 테클때문에 세례명이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가 되고,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빅토리아 여왕은 훗날 자신이 대모가 되었을때 한 아이에게 백부인 조지 4세처럼은 아니지만 이름 때문에 테클을 걸게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인 캠브리지의 메리 애들라이드는 "팻메리"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살이 많이 찐 사람이었습니다.게다가 재산도 많은 편이 아니라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왕자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캠브리지의 메리가 혼기를 놓치자,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사촌이 미혼으로 늙어가는 것을 걱정했으며 의회와 함께 사촌 시집보내기 작전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찾아낸 사람이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었기에 영국의 공주와 결혼하기에는 신분이 좀 낮다고 여겨졌던 테크 공작 프란츠였습니다. 프란츠는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방계 가문 출신으로 그의 부모가 귀천상혼했었습니다.


캠브리지의 메리 애들라이드


둘 사이에서는 모두 네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첫번째 아이인 딸이 태어났을때 여왕과 여왕의 아들인 웨일즈 공 그리고 아이의 외할머니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숙모였던 캠브리지 공작부인이 대부모가 됩니다. 여왕은 세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대부모가 되기에 아이의 이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에 못마땅한 점을 발견하고는 지적질을 합니다.


첫 딸과 함께 있는 부부


새로 태어난 아이는 애그니스 어거스타 빅토리아 루이즈 올가 폴린 클라우딘(Agnes Augusta Victoria Louise Olga Poline Claudine)으로 세례를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첫번째 이름인 "애그니스"라고 불릴 예정이었죠. 애그니스라는 이름은 아이의 고모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름을 물려받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왕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 이름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아기가 애그니스로 불릴꺼라는 사실에 충격받았소,물론 예쁜이름이고 아버지가족의 이름이 맨처음 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오. 하지만 그대와 사랑하는 고모 글로스터 공작부인의 이름인 메리가 우리에게는 더 친근하오


여왕은 영국 왕가에서 친숙하지 않은 "애그니스"라는 이름으로 짓는 것을 반대합니다. 아마도 여왕은 첫번째 딸이니 아이의 이름을 아이의 어머니 이름을 딸것이라고 생각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사촌에게 테클을 걸었죠.


빅토리아 여왕, 1870년대


여왕의 편지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세례명을 다시 조합해서  빅토리아 메리 어거스타 루이즈 올가 폴린 클라우딘 애그니스 라고 붙이게 됩니다. 당연 여왕의 이름을 가장 먼저 넣음으로써 여왕의 체면을 세워줬으며 여왕의 의견대로 아이의 어머니의 이름인 "메리"를 그다음에 넣었고 모두가 "메리"라고 부를거라는 것을 확인 시켜줬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대부모이자 외할머니 이름을 그 다음에 넣었으며 다음으로 친가쪽 이름들을 배치하게 됩니다.


이렇게 테클 걸었던 아이는 "메리"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가끔 "빅토리아"라고 표기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메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알려지게 되죠.

그리고 이 아이는 자라서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조지 5세와 결혼해서 영국의 메리 왕비가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쩌면 현 영국 여왕의 할머니 이름을 "메리"가 아니라 "애그니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두 손녀인 엘리자베스와 마거릿과 함께 있는 메리 왕비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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