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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데..2년쯤은 기다릴수 있어!

오스카르 2세의 둘째아들인 오스카르 왕자의 결혼 이야기

by 엘아라

스웨덴의 오스카르 2세의 둘째 아들은 오스카르 왕자입니다. 그는 스웨덴의 해군으로 복무했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409px-Oscar_Bernadotte%2C_Svenskt_portr%C3%A4ttgalleri.jpg 오스카르 왕자

오스카르 왕자는 1885년 암스테르담에서 진료를 받습니다. 이때 형수이자 스웨덴의 왕태자비였던 바덴의 빅토리아가 아픈 시동생을 보러 갔는데 왕태자비를 따라 시녀들도 함께 가게 되죠. 그리고 오스카르 왕자는 형수의 시녀였던 에바 문크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오스카르 왕자와 에바 문크는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왕태자비의 시녀였던 에바는 스웨덴의 귀족가문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 왕가에서는 비슷한 지위의 통치 왕가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야한다는 가문의 규칙이 있었고 이를 어길경우 "귀천상혼"으로 왕위계승권을 박탈했습니다.


사실 베르나도트 가문 자체가 평민 출신이었기에 이런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선택하는 것은 이상한 일로 보여질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벼락부자"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 더욱더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 통치가문과 통혼을 지속적으로 하므로써 가문의 지위를 인정받게 하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오스카르 왕자는 에바 문크와 사랑에 빠진뒤 가족들에게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오스카르의 이야기에 왕실 가족들은 발칵 뒤집어 지는데 특히 아버지였던 오스카르 2세가 아들의 결혼을 크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스카르 왕자는 이미 결혼한 형이 있었으며 자기 말고도 남동생이 둘이나 더 있었기에 자신이 귀천상혼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스카르 2세는 아들의 귀천상혼을 허락할 경우 남은 아들들 역시 형을 따라 귀천상혼 할것을 우려했을것입니다.


409px-Ebba_Bernadotte%2C_Svenskt_portr%C3%A4ttgalleri.jpg 풀킬라의 에바 문크(에바 문크 아프 풀킬라)


오스카르 2세는 아들에게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으며 일단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에바 문크는 시녀 지위에서 해임되어서 궁정에서 나갔었죠. 다시 말해서 오스카르 2세는 아들과 에바 문크를 떼어놓은 것이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이야기가 사실이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스카르 왕자는 자신의 결심을 바꿀 생각이 없었으며, 2년이 지난 뒤에 가족들에게 자신은 여전히 에바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들의 굳은 결심에 오스카르 2세는 결국 의지를 꺽게 됩니다. 대신 다른 두 아들들인 칼과 유셴 왕자에게는 형처럼 귀천상혼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363px-Portrett_av_arveprins_Oscar_%28senere_Oscar_II%29_og_prinsesse_Sophie_med_familie_%286961203929%29.jpg 네 아들들과 함께 있는 오스카르 2세와 소피아 왕비 (국왕이 되기 전)


1881년 1월 21일 무도회에서 오스카르 왕자와 에바 문크는 공식적으로 함께 춤을 춥니다. 이것으로 둘이 결혼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것이었습니다. 그리고 8일뒤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으며 두달후에 결혼을 합니다. 동시에 오스카르 왕자의 왕위계승권은 박탈당합니다. 그의 공작령은 회수되었으며 "국왕의 아들"에 대한 경칭으로 Prince Bernadotte라고 불리게 됩니다. 그의 아내인 에바 역시 princess라고 불렸지만 이것은 정식 호칭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오스카르 왕자는 외가쪽 친척이었던 룩셈부르크 대공으로부터 "비스보리 백작"칭호를 부여받았습니다. 물론 둘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비록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하긴 했지만 오스카르 왕자 부부는 스웨덴 왕실 가족들과 여전히 교류하면서 지냈었습니다.


1280px-Oscar_II_of_Sweden_%26_family_1905.jpg 1905년경의 스웨덴 왕가 사람들, 맨 왼쪽에서 두번째와 세번째가 오스카르와 그의 아내인 에바입니다.


스웨덴 왕가는 여전히 엄격한 귀천상혼제도를 적용했지만, 이후 스웨덴 왕가에서는 많은 왕자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계승권을 버리고 귀천상혼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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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현 스웨덴 왕가에서 자유롭게 비통치 가문의 여성과 결혼하고도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하지 않은 첫번째 사람은 바로 현 스웨덴 국왕이었습니다. 현 스웨덴 국왕은 즉위한뒤에 실비아 왕비와 결혼했고, 이로써 스웨덴 왕가에서는 더이상 귀천상혼을 적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하기 둘

이 오스카르 왕자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다섯명의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그중 막내인 폴케 베르나도트는 스카웃과 적십자 활동에 열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차대전 당시 독일과의 협상을 진행해서 포로교환으로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데려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후 폴케 베르나도트는 중재자 역할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개입합니다만, 협상과정에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측 사람들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의 아내인 에스텔은 남편이 죽은뒤 남편이 했던 많은 일들을 물려받았으며, 남편을 기리기 위한 사업 역시 합니다.

현재 스웨덴의 제2왕위계승자는 현스웨덴 국왕의 외손녀이자 제1왕위계승자인 빅토리아 공주의 딸인 에스텔 공주입니다. 이 에스텔 공주의 이름이 바로 폴케 베르나도트의 아내인 비스보리 백작부인 에스텔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Folke_Bernadotte-1943.jpg 1943년 포로교환당시 스웨덴으로 온 오스트레일리아(호주)병사들과 함께 있는 폴케 베르나도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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