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5세와 바덴의 빅토리아의 결혼
1880년경 스웨덴에서는 스웨덴의 제 1 왕위 계승자인 구스타프의 결혼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부후보로 거론되던 사람들은 빅토리아 여왕과 관계되던 인물듥로,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와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스타프 왕태자가 결혼한 사람은 "빅토리아"와 관련있는 사람이었지만 위의 세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바덴의 빅토리아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프로이센의 루이제로 빌헬름 1세의 딸이자, 한때 스웨덴의 칼 15세와 혼담이 있었던 여성이었습니다.
구스타프와 빅토리아는 1881년 빅토리아의 사촌인 독일의 빌헬름 왕자(후에 빌헬름 2세)의 결혼식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곧 둘은 결혼을 결정하게 되죠. 바덴의 빅토리아는 스웨덴 왕가에서 볼때 꽤나 적당한 신붓감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독일 황제의 외손녀였을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바덴 대공가문의 후손이었으며 또 러시아 황실과도 인척관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적당한 이유는 바로 그녀의 할머니가 스웨덴의 공주였다는 사실입니다.
바덴의 빅토리아의 할머니인 소피아는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그의 부인인 바덴의 프레데리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덴의 빅토리아는 베르나도트 가문 이전의 스웨덴 왕가의 후손이었으며 빅토리아와 구스타프가 결혼하므로써, 둘의 후손은 선왕들이 모두 선조가 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왕가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했던 스웨덴 왕가에서는 더 없이 좋을 신붓감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왕가의 결혼처럼 바덴의 빅토리아와 구스타프 5세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빅토리아는 연약했으며 추운 스웨덴의 기후를 견디지 못했고 따뜻한 곳을 찾아 자주 요양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스웨덴을 떠나있는것은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려는 것이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위계승자의 부인이자 훗날에는 왕비가 되는 빅토리아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거의 외국에 머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았었습니다. 또 구스타프 5세 역시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뎠었는데, 훗날 며느리인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이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때,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생각하면서 며느리의 이혼을 승락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칼 14세 요한이 스웨덴의 국왕으로 선출되면서 그는 칼 13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혈연적으로 유럽 왕가와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국왕들 역시 이전 왕가와 혈연적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스타프 5세와 바덴의 빅토리아의 아들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베르나도트 가문은 물론, 이전 왕가였던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과 직접적 혈연관계로 연결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 이전 왕가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이나 바사가문과도 혈연으로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