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는 노르웨이의 국왕은?
오스카르 2세가 즉위한 뒤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바로 노르웨이 독립문제였습니다. 칼 13세때 합병된 뒤, 노르웨이는 오래도록 스웨덴과 동군연합의 형태로 있었습니다만 노르웨이는 독립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노르웨이는 오래전 칼마르 동맹시기까지 스웨덴과 동군 연합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칼마르 동맹에서 스웨덴이 떨어져나가면서 이후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동군 연합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칼 14세 요한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합병시켰죠. 이후 노르웨이는 독립을 원하게 됩니다.
노르웨이측에서의 독립 요구가 점점 거세지게 되는데, 이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노벨의 경우 노르웨이가 여전히 스웨덴과 연합 왕국 형태로 남길 바랬기에 노벨 평화상은 스톡홀름이 아닌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에서 수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반대하는 인물중 하나가 바로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오스카르 2세였습니다. 그는 당연히 노르웨이를 잃는 것을 용납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독립 요구가 거세 지면서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중 한 방안이 오스카르 2세의 셋째아들이자 인기가 있었던 칼 왕자를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세우는 것을 모색한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안에 대해 오스카르 2세는 자신이 노르웨이의 국왕인 이상 아들이라도 자신이 살아있을때 왕권을 운운하는 것은 반역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독립을 두고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갈등은 점차 심해졌는데, 이 상황은 두 나라간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을 중재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오스카르 2세의 왕비였던 소피아 왕비였습니다. 소피아 왕비는 노르웨이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노르웨이가 평화적으로 독립할수 있도록 국왕과 여러 사람들을 설득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부터 독립을 했고, 노르웨이의 새 국왕은 덴마크의 프레데릭 8세의 둘째아들인 칼 왕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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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가 독립할때 덴마크의 칼 왕자를 선택한것은 여러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아내가 바로 영국의 에드워드 7세의 딸이었다는 점입니다. 노르웨이는 영국의 공주를 아내로 맞은 칼 왕자가 국왕이 된다면, 국제 사회에서 노르웨이의 독립을 더 확고히 할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칼 왕자가 바로 스웨덴의 칼 15세의 외손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웨덴 왕가의 혈통도 가진 칼 왕자를 국왕으로 맞는 것은 노르웨이 측에서 스웨덴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사실 칼 왕자의 이름 역시 외할아버지였던 스웨덴의 칼 15세의 이름을 딴것이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