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Jul 18. 2016

족보를 꼬아보아요 : 세번째

새아버지의 남동생과 결혼하면?

1796년 1월 한 젊은 장군이 자신보다 여섯살 많은 아이 둘 딸린 과부에게 청혼을 합니다. 그리고 둘은 그해 3월에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둘이 바로 나폴레옹과 조제핀 드 보아르네였습니다.


조제핀은 나폴레옹과 결혼할 당시 죽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둘이 있었습니다. 아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와 딸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조제핀과 결혼하면서 조제핀의 두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결혼


나폴레옹은 조제핀을 매우 사랑했으며, 조제핀의 두 아이들 역시 자신의 친자식처럼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상황은 훗날 외젠과 오르탕스가 나폴레옹이 조제핀과 이혼한 뒤에도 나폴레옹에 여전히 충성스러웠던 것을 설명할수 있을듯합니다.


물론 나폴레옹의 가족들은 조제핀과 나폴레옹의 결혼에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조제핀이 귀족출신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인물들과 많이 알고 있는 여성이었지만 나폴레옹보다 나이도 많았고 아이들도 있던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조제핀과 결혼하기전 첫 약혼녀였던 데지레 클라리와의 약혼을 깼는데, 문제는 나폴레옹의 가족들이 데지레를 너무 좋아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의 가족들이 조제핀에 대해서 매우 안 좋게 생각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상황은 좀더 복잡하게 됩니다. 일단 나폴레옹과 조제핀과의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조제핀은 이미 두 아이를 낳았었기에 누가봐도 아이가 없는 것은 나폴레옹쪽의 문제라고 여겨졌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폴레옹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가족들 내에서 치열한 다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조제핀의 아이들을 자신의 친자식처럼 여겼기에 외젠 역시 후계자 후보중 한명으로 여겼었던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나폴레옹의 가족들의 반발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조제핀도 외젠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가족들과 자신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놔둘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황제가 된 뒤 나폴레옹은 조제핀과 점점 사이가 멀어지는 상황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조제핀은 한명이라도 자신의 편이 더 필요했었습니다.


로브를 입은 조제핀 황후


한편 나폴레옹은 황제가 된 뒤 자신의 제국을 경영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형제 자매들에게 지위를 부여해서 여러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미혼인 동생들을  유럽의 왕가 사람들과 혼인시키려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동생인 뤼시엥은 형의 계획을 비웃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형의 허락없이 결혼해버렸고, 막내동생이었던 제롬도 미국 여성과 결혼했다가 나폴레옹의 진노로 결혼을 무효로 돌리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로브를 입은 나폴레옹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상황은 결국 나폴레옹의 동생인 루이와 조제핀의 딸인 오르탕스를 결혼시키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결혼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조제핀으로 그녀는 오르탕스와 루이가 결혼하므로써 일단 가문내에서 자신의 편을 얻을수 있고, 또 둘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를 후계자로 삼을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폴레옹의 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와 나폴레옹의 의붓딸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동생,홀란드의 국왕


하지만 이 결혼은 매우 불행한 결혼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다른 형제들 처럼 루이 역시 형인 나폴레옹에게 반발심이 컸는데, 나폴레옹은 황제가 된 뒤 자신의 생각을 가족들에게 강요했으며 무조건 따르라고 압력을 넣었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 역시 사실상 마음에 둔 여성이 따로 있었지만 형의 강요로 오르탕스와 결혼했었습니다. 결국 이런 압력은 루이에게 형인 나폴레옹에 대한 반발심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반면 오르탕스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친자식처럼 사랑했던 새아버지 나폴레옹에 대해서 매우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새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붓삼촌이었던 루이와 결혼했으며 그녀의 아이는 나폴레옹에 의해서 후계자로 여겨질 정도였었죠.

이런 상황은 루이와 오르탕스가 서로에게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결혼생활 내내 불행했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나폴레옹의 의붓딸, 루이 보나파르트의 부인


루이와 오르탕스 사이에서는 세명의 자녀가 태어나는데, 특히 막내아들인 루이 나폴레옹은 후에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됩니다.


나폴레옹 3세


더하기

최근 Y염색체의 하플로그룹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여러 가문들의 Y염색체 하플로그룹들을 분석하는 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보나파르트 가문의 Y염색체 하플로그룹과 나폴레옹 3세의 Y염색체 하플로그룹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아마도 나폴레옹 3세는 루이의 아들이 아니라 오르탕스의 애인중 한명의 아들일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오르탕스는 루이와 헤어진뒤 애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한명 더 낳았으며 이 아이는 후에 이부형인 나폴레옹 3세에 의해서 "모르니 공작"지위를 부여받았었습니다.

모르니 공작, 오르탕스의 아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마누라는 싫지만 딸은 너무 좋아!-두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