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결혼
1920년 5월 1일 스웨덴의 수상은 메이데이 기념 연설을 하던중 매우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여섯째아이를 임신중이던 왕태자비 마르가레타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수상은 놀라서 연설을 중단하고 왕태자인 구스타프 아돌프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아내였던 코넛의 마거릿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은 스웨덴 왕가는 물론 스웨덴 국민들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던 왕태자비의 죽음은 모두가 슬퍼한 일이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슬펐던 사람은 남편인 구스타프 아돌프와 마거릿의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무가 모든것보다 우선한다"라는 모토를 가진 구스타프 아돌프는 의무를 위해 재혼해야만했습니다. 당시 스웨덴 왕가는 좀 복잡한 사정이었습니다. 사실 왕실에서는 "안주인"역할을 할 여성이 필요했는데 마거릿이 죽은뒤 그 안주인 역할을 할 사람이 애매했던 것입니다. 왕실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인 왕비가 이런 일들을 도맡아야했지만, 구스타프 아돌프의 어머니였던 빅토리아 왕비는 건강상의 문제로 스웨덴에 있지 않았고 거의 남부 지중해 지방의 따뜻한 곳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동생인 빌헬름 왕자는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했었지만, 마거릿이 죽었을때는 둘은 이혼한 상황이었습니다. 국왕의 동생들중 한명은 귀천상혼했기에 그의 아내가 궁정을 주도할수 없었으며 막내동생은 미혼이었습니다. 덴마크 공주와 결혼했던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 칼과 그의 아내인 잉에보리 왕자비는 궁정에서 벗어나 조용히 개인적 삶을 사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궁정에서 안주인 역할을 할 여성이 필요했고 의무에 가장 민감한 구스타프 아돌프는 자신이 재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었을 것입니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던 구스타프 아돌프는 이제 의무로 결혼해야했기에 사랑보다는 의무에 충실할수 있는 적당한 여성을 찾으려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우 엄격한 스웨덴 왕실의 결혼 조건과 다섯아이가 딸린 홀아비라는 상태는 그가 아내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듭니다.
첫아내가 죽은 3년후인 1923년 구스타프 아돌프는 한 여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이라는 이름의 여성이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왕태자가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정작 왕태자가 결혼할 여성이 누구인지는 몰랐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어디의 공주나 군주의 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웨덴은 통치 왕가의 여성과 결혼해야하는 엄격한 법률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런데 구스타프 아돌프가 결혼할 여성은 영국의 귀족 칭호인 "레이디"라는 경칭을 쓰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겨우 영국의 후작이었죠. 이런 상황은 결혼전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모계로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었으며, 여러 유력 왕가와 친척관계의 여성이었습니다. 일례로 루이즈의 사촌인 에나는 에스파냐의 왕비였었죠. 결국 영국의 조지 5세는 루이즈가 모계로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기에 "영국 왕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줬으며, 이것은 스웨덴과 영국 사이에 외교 협정으로 체결되기 까지 합니다.
약혼이 공표되고 신문에 루이즈의 사진이 실렸을때 스웨덴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상냥하고 사랑스러웠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였던 구스타프 아돌프의 첫번째 부인인 마거릿에 비해, 루이즈는 너무나도 "못생긴"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웨덴 사람들 대부분이 루이즈가 어느 집안 출신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아마도 호의적인 평가를 얻는것은 더 힘들었던듯합니다.
구스타프 아돌프와 루이즈는 영국에서 결혼합니다. 그리고 함께 스웨덴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스웨덴으로 간 직후부터 스웨덴 사람들은 루이즈에 대해서 호감을 표시합니다. 이것은 스웨덴에 도착한 루이즈에 대해서 영국 외교관이 본국에 보고했던 내용에 반영되었습니다.
모든 곳에서 그녀(루이즈)의 세련되고 고귀한 태도와 온화한 매너 그리고 착한 성품을 추켜세우는 말 밖에 들을수 없습니다. 스웨덴 언론에 의해 질이 떨어지는 사진이 기사로 나간 뒤 형성되었던 가장 낙천적 기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늘 소심하지만 상냥하고 솔직하고 소탈한 성품이었던 루이즈는 역시 소탈하지만 늘 의무가 최 우선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프와 매우 잘맞는 사이였습니다. 부부는 평생 행복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