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3세와 그의 아내인 앤 네빌
세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에서 세익스피어는 리처드 3세를 매우 악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세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대는 튜더 왕가 시대였으며, 튜더 왕가의 첫번째 국왕이었던 헨리 튜더(헨리 7세)는 리처드 3세를 물리치고 국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리처드가 레이디 앤 네빌과 결혼하는 과정을 보면 세익스피어는 마치 그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레이디 앤과 결혼하는 것처럼 나옵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사실 리처드 3세와 레이디 앤 네빌의 결혼은 전형적인 기사도 문학에 나오는 곤경에 빠진 레이디와 그녀를 구하는 기사의 이야기 같습니다.
앤 네빌은 16대 워릭 백작으로 "킹메이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리처드 네빌의 둘째딸이었습니다. 리처드 네빌은 원래 에드워드 4세의 가장 큰 조력자였습니다만, 에드워드 4세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면서 우드빌 가문을 중용하게 되자 에드워드 4세와 갈등을 빚게 됩니다. 결국 그는 편을 바꿔서 랭카스터 가문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랭카스터 가문과의 동맹의 상징으로 딸인 앤을 헨리 6세의 외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결혼시켰습니다.
하지만 앤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은 에드워드 4세와의 전투에서 패배해서 죽음을 당했으며, 앤의 남편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역시 튜크스버리 전투에서 사망합니다. 이 전투에서 앤의 시어머니인 앙주의 마거릿과 앤은 에드워드 4세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4세는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앤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며, 그녀를 언니였던 이사벨에게 보내게 됩니다. 앤의 언니인 이사벨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결혼한 상태였고 이때문에 앤이 클라렌스 공작부인의 식솔이 되는 것은 나름 편안한 삶을 살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앤의 상태는 그리 편안하지 못했는데 바로 재산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워릭 백작가문의 엄청난 재산은 앤과 앤의 언니인 이사벨에게 상속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워릭 백작의 반란은 상속 문제를 좀 복잡하게 했는데 앤의 어머니이자 워릭 백작령의 상속녀인 앤 드 보챔프가 살아있는 상황이었지만, 반란에 연루되었기에 워릭 백작가문의 영지 모두가 자녀들에게 상속되기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앤의 형부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는 처가의 재산 모두를 아내인 이사벨이 상속받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앤이 조지의 보호아래 있는 동안 그는 처가 재산 모두를 자신의 뜻대로 사용할수 있지만, 앤이 결혼이라도 할경우 앤의 남편과 권리를 나눠야했으며 앤에게서 자녀가 태어날경우 영지는 앤의 후손에게 나눠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결국 조지는 앤이 결혼하지 않길 바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중세에는 어느정도 흔한 일이었는데 아마도 조지는 처제를 자신의 식솔로 영원히 묶어두거나 아니면 수녀원에 보내버리려 했을 것입니다.
이런 앤에게 구혼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지의 동생이었던 클라렌스 공작 리처드였습니다. 리처드는 어린시절부터 워릭 백작의 성에서 기사로써 훈련받았으며 이때문에 앤과 잘 아는 사이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리처드는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앤에게 마음이 있었을수 있습니다. 게다가 앤은 잉글랜드 최고의 상속녀였기에 적당한 신부감이기도 했습니다.
리처드의 구혼을 못마땅해한 조지는 리처드가 앤과 결혼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리처드가 앤을 못찾게 하기 위해 하녀로 변장시켰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리처드는 앤을 찾아냈고 그녀를 조지의 손에서 벗어나 성소에 들어갈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리처드가 앤의 상속영지와 지위를 탐내서 결혼했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결혼을 반대하는 형을 설득하기 위해 앤이 상속권을 주장할수 있는 워릭 백작 지위와 솔즈버리 백작 지위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규모였던 워릭 백작령의 상당부분 역시 포기했다고 합니다.
결국 리처드와 앤의 결혼이야기는 로맨스 소설의 소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한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닐까합니다.
더하기
2012년 리처드 3세의 유해가 발굴된 뒤 그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야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리처드가 사랑하는 아내 앤의 곁에 묻혀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리처드는 오래도록 묻혀있었던 레스터 지방의 대성당에 묻히게 되죠.
그리고 리처드의 이장이 거행된뒤 레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에 대해서 국왕 리처드 3세의 가호때문이었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