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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03. 2016

근친결혼은 합스부르크 가문만 하는 것이 아니야!(2)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후손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평생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아내와 매우 사이가 나빴고 결국 둘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아내와 결혼후에도 여전히 연애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두번째 아내와 결혼할 무렵,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평생 애인으로 남은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녀는 후에 리히테나우 백작부인으로 알려지게 되는 빌헬미네 엔케였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빌헬미네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그녀는 국왕의 정부로 국왕이 죽을때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 정부외에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아내인 왕비가 살아있는 동안, 아내의 시녀들과 중혼으로 두번더 결혼을 합니다.


리히테나우 백작부인 빌헬미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정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1867년 아내의 시녀였던 율리 폰 보스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결혼후 "인겐하임 백작부인"으로 불리게 되는데, 아들인 구스타프 아돌프 폰 인겐하임을 낳은 직후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가 죽은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또 다시 아내의 시녀였던 조피 폰 된호프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조피 폰 된호프는 정치적 영향력을 원했었지만 결국 그녀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조피는 헤어져 살았다고 합니다.


인겐하임 백작부인 율리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아내인 왕비와의 사이에서 수많은 자녀가 있었을뿐 아니라 두번의 중혼으로도 아이들을 얻었으며 또 정부들에게서도 자녀를 얻었습니다. 특히 가장 영향력이 컸던 리히테나우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여러 아이가 태어났는데 성인으로 성장해서 후손이 있는 자녀는 딸인 마리안 폰 데어 마르크 뿐이었습니다. 마리안 폰 데어 마르크는 세번 결혼했으며 여러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마리안 폰 데어 마르크는 스톨베르크 백작이었던 프리드리히 추 스톨베르크와 첫번째 결혼을 했고 여기서 루이제라는 딸을 얻습니다. 그뒤 두번 더 결혼하는데 세번째 남편이었던 에티엔 드 티에리와의 사이에서는 외제니 드 티에리를 낳았습니다.

이중 루이제 추 스톨베르크는 아버지의 뒤를 이은 숙부 요제프 추 스톨베르크와 결혼했고 딸인 엘리자베트 추 스톨베르크를 낳았습니다.


한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첫번째 중혼으로 태어난 아들인 인겐하임 백작 구스타프 아돌프 폰 인겐하임은 이복 누나인 마리안 폰 데어 마르크의 딸인 외제니 드 티에리와 결혼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제니와 구스타프 아돌프는 조카-외삼촌 사이였었죠. 둘사이에서는 여러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 장남인 율리우스 폰 인겐하임은 다시 사촌인 엘리자베트 추 스톨베르크와 결혼합니다. 


인겐하임 백작 구스타프 아돌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후손들중 일부가 이렇게 근친결혼을 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신분이 좀 애매했었기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정부의 아이들이나 중혼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프로이센 왕국의 상속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왕의 자녀들이나 후손들이었으며 귀천상혼제도를 엄격하게 따르고 있던 독일에서 이들의 지위는 애매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결혼이나 국왕으로부터 귀족지위를 얻었으며 왕가의 방계 혈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통치 가문의 후손들과 결혼한다는 어려운 일이었죠. 그렇다고 어느정도 지위에 있지 않은 귀족들과 결혼하는 것은 체면에 맞지 않은 일이었기도 할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비슷한 처지의 같은 친척들끼리 결혼하는 상황을 낳았을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후손들중 근친결혼한 후손들 일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가계도는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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