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아홉 번째
훗날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결혼해서 스웨덴의 왕비가 되는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바텐베르크의 루이즈)은 당시 기준으로는 오래도록 노처녀로 늙어갔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예뻤던 언니 앨리스에게 가려서 늘 소심한 소녀로 자랐고 커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딸들처럼 어머니의 벗으로 어머니 곁에 머물렀었지만 그녀가 꼭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국왕이 청혼한 적도 있었고, 비밀 약혼도 했었고, 전쟁 때문에 결혼하려던 남자가 죽기도 했었고, 약혼했던 남자도 있었죠. 하지만 그녀가 노처녀가 된 것은 마지막 약혼한 남자 때문이었습니다.
루이즈는 1차 대전 때 프랑스에서 간호사로 일을 했었습니다. 가문의 여성들이 간호사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외할머니 앨리스 대공비로부터 내려오던 가풍이나 다름없었죠. 언니인 앨리스 역시 발칸 전쟁 때 간호사로 일했었고 그에 대한 훈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었습니다. 어쨌든 루이즈 역시 "피를 보면 꺄악하고 쓰러지는 왕족"은 아니었고 씩씩하게 간호업무를 해서 프랑스와 영국에서 메달을 수여받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했었죠. 이때 루이즈는 병원에서 역시 사람들을 돕던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루이즈는 그와 결혼하길 바라게 되죠.
루이즈가 결혼하길 바랬던 남자는 "알렉산더 스튜어트-힐"이라는 이름의 좀 괴상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재능 있는 화가였지만 상인 출신의 그의 아버지는 집안의 뒤를 잇지 않는 그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죠. 그는 결국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루이즈의 가족들은 가난한데다가 어딘가 좀 묘한 이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루이즈에 대해서 걱정을 했었습니다. 비록 루이즈의 선택을 존중해주긴 했었지만 루이즈의 언니인 앨리스(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는 루이즈가 사랑이 아닌 "우정"에 기초한 감정으로 그와 결혼하려 한다고 걱정할 정도였죠. 어쨌든 약혼을 바로 공표하지 않고 그 뒤에 공표하기로 했었는데 루이즈의 집안 사정이 좀 복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약혼기간 내내 약혼은 그냥 비밀로 머물게 됩니다.
1918년에 이르게 되면서 루이즈와 스튜어트-힐과의 결혼 이야기는 결국 끝장나게 됩니다. 러시아에서 루이즈의 이모들과 이모 가족들(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와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이 살해당해서 가족들 모두 루이즈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정신이 없었죠. 이 상황은 루이즈의 아버지가 딸에게 "네 약혼자가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단다."라는 이야기를 해야 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딸이 사실을 알기 전에 적당히 처리했으면 좋았겠지만 러시아 가족들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매우 충격이었기에 기회를 놓쳤던 것이었죠.(루이즈의 어머니이자 황후와 대공비의 언니였던 빅토리아는 동생들의 죽음을 잊기 위해 매일 아무 말없이 정원에서 지칠 때까지 정원일만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30살이 다 됐었던 루이즈는 철저하게 빅토리아 시대의 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동성연애"라는 개념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순진한 여성으로 성장했다는 것이었죠. 결국 루이즈의 아버지이자 한때 바람둥이로 명성이 높았던 1대 밀포드헤이븐 후작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딸에게 "동성연애"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야만 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경악스러운 상황을 듣고는 루이즈는 매우 우울해했으며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결혼하지 않겠다던 "홀아비이자 국왕(이 될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