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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04. 2015

뒷날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자!

가벼운  역사이야기... 열 번째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바텐베르크의 루이즈는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와 그의 아내인 헤센의 빅토리아의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친가는 헤센 대공 가문의 상속권이 없는 방계가문이었지만, 어머니는 헤센 대공의 딸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이 사랑한 외손녀였으며, 루이즈의 이모들은 러시아의 대공비와 황후, 독일의 왕자비등이 되었었죠. 물론 외삼촌은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헤센의 대공이 되었죠.

친가 쪽인 바텐베르크 가문은 귀천상혼 한 가문이었지만, 루이즈의 아버지인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는 매우 뛰어난 영국 해군이었으며 잘생긴 외모와 괜찮은 능력으로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 7세에게 신임받던  신하이기도했습니다. 게다가 훗날 루이즈의 사촌이었던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에나)는 에스파냐의 왕비가 되었죠.


이런 루이즈의 가족관계는 루이즈를 나름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만들었었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 전 신붓감을 구하던 포르투갈의 국왕 마누엘 2세가 루이즈와 결혼하고 싶어 한 것 역시 이런 관계 때문이었을듯합니다.

이 혼담에 대해 루이즈는 바로 거절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소심한 성격이었던 루이즈는 귀천상혼 한 가문 출신의 여성으로 왕비가 된다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듯합니다. 사촌인 에나가 고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낀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루이즈의 부모와 이모들 부부와 외삼촌


하지만 친척관계를 통해 유럽 외교에 열을 올리던 에드워드 7세에게 이 기회는 포르투갈과 영국이 한번 더 강하게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계기였기에 루이즈의 부모에게 딸을 다시 한번 설득해보라고 찔러 봅니다. 루이즈의 부모는 서로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였고, 이 때문에 자녀들도 그렇게 되길 바래서 루이즈에게 이 혼담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루이즈에게 한번 더 의사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이때 루이즈는 "저는 홀아비나 국왕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답변하면서 혼담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흘러 루이즈는 우리나라 나이로 36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결혼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잘 안 풀렸는데 마지막 약혼 상대는 매우 충격적이었기에 결국 루이즈는 결혼에 대한 미련을 접었었습니다. 가족들 역시 루이즈의 결혼에 대해서 미련을 버렸는데, 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아들이 상속녀와 결혼했을 때 자신이 죽고 나서도 혼자 살게 될 누나 루이즈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을 거라면서 은근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때쯤 루이즈는 이제 어른이 된 언니 앨리스의 딸들인 그리스 조카들의 샤프롱으로 조카들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샤프롱이란 대충 사교계에 갓 데뷔한 순진한 젊은 여성들이 바람둥이한테 넘어가거나 아니면 맘에 드는 남자와 야반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따라다니던 나이 많은 여성들을 말하는 것이었죠. 루이즈는 파티에 조카들을 따라다니면서 누가 조카들의 신랑감으로 괜찮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루이즈는 조카들의 남편감이 아닌 자신의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1923년 루이즈는 영국을 방문한 스웨덴의 왕태자인 구스타프 아돌프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 사촌의 남편이었으며, 그의 아내는 다섯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상태였었죠. 이전에도 루이즈는 그를 만나긴 했었습니다만 그냥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었었죠.  이때 구스타프 아돌프는 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와 함께 드라이브를 갔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대로 루이즈는 이런 어머니를 따라 함께 드라이브를 갔었습니다. 몇 번 드라이브를 간뒤 루이즈는 그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리고 드라이브 갔다 온 어느 날 이 왕자님은 루이즈에게 무릎 꿇고 청혼을 합니다.


이 상황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루이즈였습니다. 가족들은 루이즈가 청혼받은 사실을 알고는 얼씨구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특히 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구스타프 아돌프에게 소심한 루이즈는 미적대면 결혼을 못한다고 강하게 나가라고 충고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루이즈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고민한 끝에 청혼한지 10일 후에 그 청혼을 받아들이죠.


스웨덴의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루이즈는 포르투갈 국왕을 거절하면서 "홀아비나 국왕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결국은 "홀아비이자 국왕(이 될 남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 일의 교훈은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함부로 말하지 말자 입니다.



더하기

루이즈가 왕비가 될 운명이긴 했나 봐요. 포르투갈 왕비가 아니라 스웨덴 왕비로 말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두 부인들은 모두 포르투갈 왕가와 혼담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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