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1)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중 한명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가장 사랑했던 외손녀였던 헤센의 빅토리아와 그녀의 남편인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매우 외모가 아름다웠기에 빅토리아 여왕이 예뻐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가까운 사이였을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는 앨리스의 이모이기도 했고, 에스파냐의 왕비였던 바텐베르크의 에나는 앨리스의 사촌이었으며,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는 앨리스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앨리스의 아들인 필립은 현 영국 여왕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앨리스는 스스로 "그리스의 신 같았다"라고 표현했던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결혼해서 그리스 왕자비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복잡한 근현대사와 맞물려서 그녀의 삶도 매우 순탄치 못했습니다. 계속되는 망명과 경제적 궁핍함등과 가족의 비극(1차대전때 이모들과 그 가족들이 살해당함)은 그녀의 정신건강을 해쳤고 남편과 별거로 결혼생활을 끝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상황을 거쳐서 나이든 앨리스는 이제 그리스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그리스는 알바니아문제때문에 이탈리아와 전투를 하게 됩니다. 영국군의 도움으로 겨우 승리할수 있었던 그리스는 독일이 이탈리아 방어를 위해 침공하자 다른 수가 없이 항복해야 할 처지가 됩니다. 당시 수상이었던 알렉산드로스 코지리스는 국왕인 게오르기오스2세에게 항복을 권유했지만 국왕은 이를 거부했고 독일의 침략에 절망한 수상은 권총자살했었습니다.
독일이 침공하자 게오르기오스2세는 영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에 대부분의 그리스 왕족들 역시 그리스를 떠났습니다만 단 두명의 왕자비들이 그리스에 남았습니다. 늙은 국왕의 숙모들이었던 니콜라오스 왕자비 엘렌과 안드레아스 왕자비 앨리스였습니다. 남편과 별거 상황이었던 앨리스는 자신의 삶의 의의를 자선사업에서 찾고 있었고 그리스에서 시작한 자신의 자선사업을 떠날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언젠가 그리스로 돌아와야할 아들 필립을 위해서도 자신이 그리스에 터를 잡아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2차대전동안 독일과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분할 점령했었는데, 점령초기인 1941년 겨울 그리스는 식량 부족으로 인해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아테네에서만 하루에 오백명에서 천명의 아이들이 아사할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앨리스는 스웨덴 구호단체와 함께 구호소를 열게 됩니다. 식량 사정이 너무나 열악했기에 구호소는 매우 엄격하게 운영되었는데 아이들이 먹고 난뒤 남은 음식이나 찌꺼기가 있다면 부모들이 먹도록 했었습니다. 이 시기 앨리스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함께 굶주렸고 그 결과 1941년 겨울동안 앨리스는 몸무게가 26kg이나 빠지게 됩니다.
앨리스는 중립국인 스웨덴을 통해서 영국 해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아들 필립에게 연락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그녀는 편지에서 아들이 영국 해군보다는 그리스 해군에 속해서 싸우는 것이 그리스 왕자로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평온하고 안전하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편지와 달리 앨리스 역시 위험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은 왕족으로써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생긴 것이었죠.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한 후, 독일은 그리스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기 위해 계획을 했었습니다. 이에 독일 점령지에 있던 그리스의 유대인들은 서둘러 이탈리아가 점령하고 있던 지역으로 피난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내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돕게 됩니다. 당시 그리스 정교회의 대주교는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하라고 했으며 아테네 경찰서장은 유대인들을 국외로 도피시키기 위해 엄청난 위조 서류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앨리스 역시 한 유대인 가족을 자신의 집에 숨겨줬습니다.
앨리스의 집에 숨었던 사람들은 코헨 집안 사람들로 이들은 그리스의 유력자 가문이었습니다. 발칸 전쟁 당시 앨리스의 시아버지였던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 가족들은 코헨 가의 집에 머물렀고, 게오르기오스 1세는 코헨가 사람들의 친절에 감사하면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부탁하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숨이 위태로워지게 되자 가족들은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에 남아있는 왕가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죠. 앨리스는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만나기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들을 돕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위험했기에 이 이야기를 전했던 사람에게 거절의 뜻을 밝힌뒤 자신이 따로 코헨가 사람들과 접촉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코헨가문 사람들은 앨리스의 집으로 오게 됩니다. 앨리스는 그들에 대해서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그 가족인데 나치를 피해 이곳으로 왔다고 둘러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게쉬타포는 앨리스를 불러 심문을 했었습니다. 이에 앨리스는 자신의 청력장애를 이용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못알아듣는척 했고 엉뚱한 대답을 하므로써 그들의 진을 빠지게 합니다. 결국 게쉬타포는 앨리스를 심문하는 것을 포기해야했다고 합니다.
2차대전이후 코헨가 사람중 한명이 앨리스에게 감사인사를 하러 왔을때 앨리스는 "단지 내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오"라고 말했고, 이 사실을 죽을때까지 가족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앨리스가 죽은 뒤 이스라엘에서는 앨리스에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열방의 의인"을 수여했습니다. 필립공은 이를 수락하는 연설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이 일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닌 단지 해야할 일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자료출처
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H.Vickers)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