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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8. 2016

요크 가문의 재앙인가 튜더 가문의 행운인가

엘리자베스 우드빌

"브리튼섬 최고의 미녀"라고 일컬어지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엘리자베스 우드빌!


엘리자베스 우드빌


이런 미모는 그녀를 스캔들에 휩쌓이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녀의 부모도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결혼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아버지인 리처드 우드빌은 기사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가 베드퍼드 공작(헨리 5세의 동생)의 시종무관이긴 했지만 세습귀족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젊은 우드빌에게 비빌언덕이 되기전 베드퍼드 공작은 사망했습니다.

어떤이는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미모는 그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아마 잘생겼던것은 틀림이 없었던듯합니다. 왜냐면 그는  죽은 베드퍼드 공작의 부인인 룩셈부르크의 자퀘타를 잉글랜드로 모셔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때 이 둘은 그만 눈맞고 맙니다.  비록 늙은 공작이랑 결혼하긴 했었지만 지위와 체면을 중요시 여기는 왕족 출신이었던 자퀘타가  지위와 체면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반했을 정도라면, 아마도 리처드 우드빌은 멋진 기사였을 듯합니다.


https://youtu.be/uD4skF3PAhM

배경음악으로 넣고 싶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마지막 장면,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입니다. 자퀘타랑 리처드 우드빌 이야기에서는 늘 이 장면이 연상됩니다.-0-;;;


왕족 그것도 국왕의 숙모와 세습귀족도 아닌 남자가 사랑에 빠진것은 골치아픈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국왕의 상태가 별로고, 내전은 일어나기 직전이고 이런 나라에서 스캔들은 더 골치아픈 일이었죠. 의회는 강경하게 대응하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이 승리하는 많은 이야기들처럼 결국 자퀘타와 리처드 우드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아이들 많이 낳고 살게 됩니다.


하여튼 나름 예쁘다고 알려진 엄마와 아마 잘생겼을것이라고 추정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이렇게 브리튼섬 최고의 미녀로 알려지게 됩니다. 


중세때 귀족 여성의 결혼은 사실 복잡한 정치 관계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엘리자베스 우드빌 같은 미녀들의 경우 좀더 남편감을 고르지 쉬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존 그레이라는 인물과 결혼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세습 여남작이었으며 어머니의 장남이었기에 아마도 어머니의 영지와 지위를 물려받을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왕가와 가까운 사이긴 했지만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상황에서 존 그레이와의 결혼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전쟁으로 깨어지게 됩니다. (..이 무슨 상투적 이야기인가...)

잉글랜드에 그 유명한 내전인 장미전쟁이 일어나면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삶도 이제 전쟁에 휩쓸리게 되죠. 우드빌 가문은 랭카스터 가문 측이었으며 그녀의 남편도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남편도 죽고 랭카스터 가문은 헤롱대고 그런 분위기로 흐르게 되죠. 


타운튼 전투, 에드워드 4세가 처음으로 왕위를 얻는 전투



어쨌든 남편 죽고 아이들과 남게 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크가문출신인 국왕을 만나기로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국왕을 꼬실려고 만난것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처럼 미성년 아들이 있는 과부의 경우 상속재산을 사용하는데 매우 애매한 상태였기에 이를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결국 제일 힘쎈 사람을 만나서 청탁을 넣기로 결심한것이었죠.


이렇게 브리튼섬 최고의 미녀는 키크고 잘생겼으며 바람둥이라고 알려진 요크 가문 국왕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운명을 바꿀 스캔들이 시작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과부라는 것을 알고 바람둥이 국왕은 가볍게 대쉬합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저는 왕비가 되기에는 모자라지만, 당신의 정부로 남기에는 너무 훌륭합니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집니다.(그런데 어디 다른데서 프랑스 국왕과 엮일뻔한 여자가 저말했다고 나오던데...-0-;;;)


에드워드 4세를 만난 엘리자베스 우드빌



"날 거절한 여자는 니가 첨이야"라는 이상한 심리로 빠져들었는지는 몰라도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결혼"이라는 형태로 다시 대쉬를 했던듯합니다. 아니면 동생인 리처드처럼 낭만적 기질이 다분해서 어려움에 빠진 레이디를 자신이 구해주기 위해 결혼하려했던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에드워드와 결혼합니다. 뭐 잘생겼는데 왕이기까지 한 남자가 결혼하자는데 저라도 당장 하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결혼합니다만 이것은 잉글랜드 특히 요크가문의 크나큰 재앙이 됩니다.

둘의 결혼으로 제일 열받은 사람은 바로 에드워드의 사촌이자 최고의 공신이었던 워릭백작이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왕과 프랑스 공주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왕이라는 작자가 파토를 냈죠. 게다가 결혼하려는 여자가 랭카스터 가문 가신의 아내였던 여자인것입니다. 공주를 차고 결혼한 여자가 요크가문 가신도 아니고 랭카스터 가문 가신 집안 출신에 그것도 애가 둘이나 딸린 여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중세에도 애딸린 여자가 재혼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그건 보통 공주나 재산이 많으면 그런거고 아니면 중세에 여자가 그렇게 재혼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예뻤으니 지참금이 별로 필요는 없었을 거긴 합니다만......(예전에 필립공의 제일 예쁜 누나인 세실을 보고 한 영국 귀족여성은 "가난한 남자의 딸로 참 적당하다"라고 언급하더군요.-0-;;;)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의 결혼


게다가 무슨 논리인지 에드워드 4세 자기는 프랑스 공주랑 결혼안하고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해놓고, 그의 동생과 워릭 백작의 장녀인 이사벨이 결혼하겠다니까 "왕자들은 국익을 위해 결혼해야함"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결혼을 반대하드랩니다. 

아니 자기는 안하면서 왜 남한테는 강요하냐고요--;;;;; 진짜 제가 워릭 백작이라도 열받을듯....


이렇게 하는일마다 테클걸리던 워릭 백작은 열받아서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게 되죠. 


워릭 백작의 반란이 실패하면서 에드워드 4세의 입지는 더욱더 공고히 해집니다. 그리고 덩달아 엘리자베스 우드빌 역시 지위가 확고해지죠. 그리고 애들도 엄청 낳으면서 지위를 더욱더 굳히게 됩니다. 하지만 세력이 미약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워릭 백작이 살아있었을때 부터 자신의 가문을 세도가문과 연결하기 위해 엄청난 행동들을 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생과 할머니 뻘인 여자(국왕의 이모)를 결혼시킨것입니다. 워릭 백작이 살아있을때도 이랬는데 우드빌 가문을 견제할만한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 행동들을 했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 특히 요크가문의 핵심인물들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와 그 가족앞에 있는 앤서니 우드빌(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동생)



이런 화려한 날들은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사실 그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긴 했었지만 국왕의 죽음은 매우 갑작스러운 일로 모두에게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당황한 틈을 타서 권력을 사로잡은 인물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였습니다. 아마 그는 우드빌 가문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력을 얻으려고 난리치는 형수와 형수의 친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리처드는 먼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측근이 될만한 사람들을 쳐냈으며, 이후에는 조카들을 뺏았고 결국은 왕위까지 뺏게 됩니다. 


그동안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아이들을 데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역권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리처드가 왕위에 오른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이제 리처드의 적이자 랭카스터 가문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헨리 튜더와 그의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손을 잡습니다.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로 온다면 장녀이자 사라진 남동생들 다음으로 계승권을 갖는 딸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헨리 튜더와 결혼시키겠다는 것이었죠.


요크의 엘리자베스



그리고 뭐 이후 상황은... 모두가 알다시피 헨리 튜더가 리처드에게 승리하고 결국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었죠.


사실 장미전쟁 이야기를 보면 에드워드 4세때 거의 내전을 평정한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요크 가문 내의 불화는 왕위를 헨리 튜더에게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요크 가문 입장에서 보면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재앙이었지만 헨리 튜더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입장에서 보면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그들에게 내려온 행운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헨리 튜더, 헨리 7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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