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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Feb 20. 2017

내 외손녀가 왕비가 될꺼야!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외손녀인 카르멘과 카디스 공작 알폰소

19세기 이후 에스파냐의 정치사는 매우 혼란하고 복잡한데, 오랜 내전과 왕가의 망명등이 번갈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알폰소 13세가 내전을 피하기 위해 망명한뒤 에스파냐의 정권을 잡은 인물은 바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독재정치를 폈었는데, 그의 아내이자 "카르멘 폴로"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는 마리아 델 카르멘 폴로 이 마르티네스-발데스는 남편인 프랑코에게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프랑코와 그의 아내 카르멘, 1969년


프랑코와 카르멘 폴로 사이에서는 자녀가 딱 한명 태어났습니다. 외동딸인 마리아 델 카르멘 프랑코 이 폴로였죠.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이름을 땄기에 카르멘 프랑코로 알려지게 되는 이 딸은 빌라베르데 후작이었던 크리스토발 마르티네스-보르디우와 결혼해서 일곱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카르멘 프랑코의 첫번째 딸은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아 역시 "마리아 델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1972년 21살의 나이로 한 남자와 결혼합니다. 그녀의 결혼은 이미 프랑코의 후계자로 예정되어 있던 후안 카를로스의 지위를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와 그 가족들, 맨 왼쪽은 장모인 프레데리카 왕비네요. 아마 현 에스파냐 국왕이 태어났을때 사진인듯합니다.


마리아 델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 이 프랑코가 결혼한 사람은 알폰소 하이메 마르셀리노 마누엘 빅토르 마리아 데 보르본-세비야 이 당피에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에스파냐에서 고위 귀족일수록 이름이 긴데 이 남자도 나름 높은 신분의 아버지를 뒀기에 이렇게 길고 긴 이름을 가지게 된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폰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카르멘 마르티네스-보르디우의 남편은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3세의 둘째아들이었던 세비야 공작 하이메의 장남이었습니다. 프랑코의 후계자로 지목된 후안 카를로스가 알폰소 13세의 셋째아들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장남이었던것을 생각해보면 서열상 알폰소가 더 위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폰소 13세는 청력장애를 가지고 있던 아들 하이메에게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하게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알폰소의 어머니가 왕족출신이 아니라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이었어도 결혼을 인정해줬던 것이었죠. 결국 왕가에서 인정하는 후계자는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과 그의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였습니다. 프랑코 역시 후안 카를로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었죠. 하지만 세비야 공작 하이메는 포기했었던 에스파냐 왕위계승권을 다시 주장했으며 이렇게 되자 그의 아들인 알폰소 역시 왕위계승권을 주장할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알폰소 데 보르본-세비야 이 당피에르, 알폰소 13세의 손자, 1963년


이런 미묘한 시기에 알폰소가 카르멘과 결혼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프랑코가 후계자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알폰소 역시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3세의 손자였으며 그의 아내는 당대 에스파냐를 통치하던 프랑코의 외손녀였었죠. 이런 상황은 누가 봐도 알폰소가 후안 카를로스 보다 더 국왕이 될 가능성이 커보였습니다. 사실 알폰소와 카르멘의 결혼은 이것을 염두에 둔 정략결혼이기도 했었죠.


이 둘의 결혼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이 바로 프랑코의 아내였던 카르멘 폴로였습니다. 그녀는 외손녀가 알폰소와 결혼하자 이제 자신의 외손녀가 왕비가 될거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카르멘 폴로, 1972년


이런 상황은 후안 카를로스가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후안 카를로스의 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은 프랑코의 독재 정치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아들이 프랑코에게 고분고분한것에 불만을 품었었다고 합니다. 프랑코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아버지를 둔 후안 카를로스 보다 자신의 외손녀와 결혼한 알폰소에게 더 마음이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나 남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햇던 프랑코의 아내인 카르멘 폴로는 외손자 외손녀들에게 매우 신경쓰는 인물이었기에 불안감은 한층 더했을 것입니다.


후안 카를로스는 아버지인 후안을 설득해서 사촌인 알폰소에게 HRH칭호와 카디스 공작 지위를 부여하도록 설득합니다. 후안 카를로스의 아버지가 가문의 수장이었기에 왕실 칭호를 부여할수 있는 사람은 후안이었죠. 이것은 프랑코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으로 이전까지 알폰소는 에스파냐의 인판테가 아니었기에 HRH칭호나 공작 지위가 없었습니다. 이런 알폰소와 결혼한 프랑코의 외손녀 역시 정식으로 왕실에서 부여한 칭호를 쓸수가 없었죠. 하지만 후안이 카디스 공작 지위와 HRH칭호를 부여하므로써 프랑코의 외손녀인 카르멘 역시 HRH 카디스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쓸수가 있었으며 이것은 프랑코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이기도 햇었습니다.


알폰소와 카르멘, 그리고 둘의 아들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1974년


한동안 알폰소는 후안 카를로스에게 위협적 존재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프랑코 사후 후안 카를로스는 에스파냐 국왕이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은 아들이 즉위 한뒤 자신의 계승권리를 포기하므로써, 후안 카를로스가 왕가에서도 인정한 정당한 국왕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줍니다.


왕실에서는 후에 알폰소의 카디스 공작 지위가 "세습 지위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하므로써 한시적 지위이며 그가 왕위계승권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고 합니다. 알폰소와 카르멘은 1979년 별거했으며 1982년 이혼했습니다.


프랑코의 아내인 카르멘 폴로는 남편이 죽은뒤 가족의 몰락을 지켜봐야했었습니다.


더하기

예전에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아버지인 인판테 후안이 "바르셀로나 백작"지위를 쓰는 것에 대해 질문한 분이 있으셨습니다. 형인 하이메는 왕위계승권이 없었지만 "세비야 공작"지위를 썼으니까요. 이것은 유럽의 왕위계승 요구자들의 전통적 습관인데 "국왕"이라고 인정받을수 없기에 왕위에 연결된 다른 지위를 쓰는 것이라죠. 바르셀로나 백작 지위 역시 에스파냐 국왕만이 쓸수 있는 지위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파냐 국왕이 되면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 백작 지위를 물려받는 것이죠. 후안 역시 제1왕위계승요구자로써 에스파냐 국왕이 가지는 다른 지위인 바르셀로나 백작이라는 칭호를 썼었습니다. 후에 후안은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를 위해 자신의 계승권을 포기했는데, 후안 카를로스는 아버지에게 바르셀로나 백작 지위를 계속 쓰도록 인정해줬습니다. 이런 사소한 칭호를 쓰는 것도 왕가에서는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인데 에스파냐 국왕으로써 바르셀로나 백작 지위를 당연히 후안 카를로스가 써야하지만 평생 왕가를 위해 살아온 아버지를 위해서 이를 허락해준것이었죠.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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