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Nov 30. 2016

베르나도트:프랑스에서의 삶(9)

1798년-결혼

파리로 돌아온 베르나도트는 잠시간의 휴식을 가진다. 그는 파리의 사교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며 베르나도트는 여러 살롱등을 다니면서 사교계 생활을 즐기게 된다. 물론 파리에서 베르나도트는 즐거운 경험만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베르나도트는 자신의 옛 상관이었던 당베르 백작이 체포당해서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그의 목숨만이라도 구하려고 했었다. 그는 정부에 "자신의 복무에 대해서 바라는 유일한 보상"이라고까지 언급하면서 당베르의 목숨을 구하려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파리에 있는 동안 베르나도트는 여러 인물들을 만났으며 많은 이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그는 적을 많이 만들기도 했지만 친구를 많이 만들기도 했다. 베르나도트는 공적으로는 매우 고지식했지만 사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며 많은 이들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언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가스코뉴 사람 특유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냈었다. 게다가 베르나도트의 외모 역시 당대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외모였었다. 당대 많은 기록들이 베르나도트의 잘생긴 외모를 자주 언급했었다. 


베르나도트


베르나도트가 친분을 쌓은 사람중에는 나폴레옹의 형이었던 조제프와 동생이었던 뤼시엥이 있었다. 이들은 베르나도트와 친하게 되었는데 뤼시엥의 경우 나폴레옹이 몰락한뒤에도 베르나도트에게 호의적이었다고 알려져있을 정도로 친분을 쌓게 된다. 


아마도 베르나도트와 친해진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길 바랬을 것이다. 바라스는 나폴레옹을 견제하고 싶어하고 있었고 이미 이전에 베르나도트를 나폴레옹 견제에 끌어들인적이 있었다. 아마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은 이런 베르나도트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자신들편에 서게 하기 위해 가족으로 엮기 위한 작업을 했다. 바로 조제프의 처제였던 외제니 데지레 클라리를 베르나도트와 결혼시키려 한 것이었다.


한때 나폴레옹과 약혼한 적이 있었던 데지레는 당시에는 나폴레옹 주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인물중 하나였다. 약혼은 깨졌지만 데지레는 조제프의 처제로 나폴레옹과 인척관계였을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누이들과도 친한 사이였다. 또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데지레를 여전히 딸처럼 여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급부상하던 나폴레옹과 조금이라도 엮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여성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또 나폴레옹 역시 데지레를 자신의 측근과 결혼시켜서 그 측근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고 했었다. 이때문에 데지레는 나폴레옹 주변의 많은 장군들을 남편감으로 소개받았었다. 특히 뒤포의 경우 데지레와 거의 결혼할뻔했다고 알려져있었는데 어쩌면 그가 이탈리아 대사관의 소요사태로 죽지 않았다면 데지레와 결혼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데지레는 훗날 뒤포에게는 관심이 없었으며 결혼할 마음도 없었다고 이야기 했지만 말이다.


사실 데지레가 나폴레옹 주변의 장군들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일수 있다. 왜냐면 그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던 남자와 약혼했었던 그녀가, 다른 남자들을 옛 약혼자와 비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데지레는 차이기까지 했었다. 비록 단순한 성격에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자길 찼던 남자에게 더 잘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훗날 데지레는 스웨덴에서 자신의 시종에게 이때에 대해 회상하면서, 베르나도트를 소개 받은 뒤 "그가 나폴레옹과 대적할만한 인물이다"라는 소리를 들은 뒤에 결혼하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데지레, 1807년



1798년 8월 17일 베르나도트와 데지레 클라리는 결혼을 했다. 나폴레옹 역시 이 결혼에 찬성했다. 물론 루이즈 페르몽(후에 마담 쥐노)는 이 결혼에 대해서 열정이 부족한 결혼이라고 언급하면서, 베르나도트는 로맨틱한 기운이 없고, 데지레는 시키는대로 결혼했다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당시에는 이 결혼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결혼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베르나도트와 나폴레옹 둘다 서로 마찰을 빚기 시작한것을 인식한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서로 "가족"이 되므로써 마찰을 어느정도 무마할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혼은 베르나도트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들게 된다. 데지레와 결혼한 베르나도트는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에게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제프와 뤼시엥은 베르나도트와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후에 조제프는 자주 동생인 나폴레옹에게 베르나도트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나폴레옹의 누이들은 베르나도트를 오빠처럼 여겼으며, 카롤린의 남편인 뮈라 역시 베르나도트와 그리 나쁜 사이가 아니였다. 적어도 뮈라가 카롤린과 결혼할때는 매우 친한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베르나도트는 뮈라의 베스트맨이 되기도 했었다.

베르나도트가 가족이 되면서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와 사이가 나빠졌을때도 다른 정적들에게 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나폴레옹에게 가족은 약점이었으며 가족에 대해서는 많이 무모한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에게는 정적들이 있었다. 피슈그뤼는 처형당했고, 모로는 망명해야했다. 그외에도 명성이 높았지만 나폴레옹과 가깝지 않았던 주르당이나 브륀 같은 장군들은 결국 잊혀지게 된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의 정적으로 여겨졌었으며, 나폴레옹과 심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살아남을수 있었다. 이것은 베르나도트가 데지레 클라리와 결혼하므로써, 그가 나폴레옹의 가장 큰 약점인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베르나도트 : 프랑스에서의 삶(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