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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09. 2015

빅토리아 여왕과 클로로포름

가벼운 역사  이야기... 열네번째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아이를 아홉이나 낳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무 중 하나가 왕위 계승자를 낳는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아홉 아이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이 의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었죠. 하지만 여왕은 아이 낳는 것을 너무나도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여왕은 임신상태에 있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으며 자주 우울해졌기에 늘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의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여왕은 임신 중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승마나 스케이트 타는 일-을 못하게 되는 것에 신경질을 냈죠. 또 출산이 가까워오면 편안하게 있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하며 남편에게 의지해서 여기저기 소파로 옮겨다닌는 일만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 낳는 고통을 제일 싫어했으며 출산 후 침대에 묶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이에 대해 남편인 앨버트 공은 아이를 낳은 후에 아내가 "죄수처럼 날짜만 센다"라고 편지에 쓸 정도였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프린세스 로열의 결혼식, 막내인 베아트리스가 태어난지 1년후에 큰딸이 결혼합니다.


여왕이 클로로포름에 대해서 처음 안 것은 1853년이었습니다. 여왕의 시녀 한 명이 이를 빼러 가서 클로로포름을 사용했는데 효과에 대해서 매우 만족해서 여왕에게 이를 추천한 것이었죠. 여덟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여왕은 아이를 낳을 때 클로로포름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여왕의 주치의였던 로콕 경은 크게 반대했었습니다. 클로로포름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며, 아이를 낳는 것을 더디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사실 로콕경의 생각 중 반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클로로포름의 나름 안전한 것처럼 보였지만, 클로로포름이 매우 치명적 위험을 가진 독극물이기에 주의 깊게 다뤄야 하는 물질이었고 결국 현재는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왕은 아이를 낳을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합니다. 여왕은 클로로포름의 사용에 매우 만족했는데 스스로 "출산은 클로로포름의 축복을 받았다... 사용 후 순조로왔으며, 조용했고 즐거웠다"라고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클로로포름 요법의 전문의였으며 여왕의 출산 때 마취의로 참석했었던 닥터 스노우 역시 "여왕께선 유쾌하고 건강해 보이셨다. 스스로 클로로포름의 효과에 매우 만족스럽다는 의사를 밝히셨다."라고 기록을 남겼었죠..


존 스노우




레오폴드를 낳을 때 클로로포름을 처음 쓴 빅토리아 여왕은 클로로포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됩니다. 여왕은 다른 여성들도 이 요법을 쓰길 권장했으며 아홉째 아이를 낳을 때 역시 클로로포름 없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죠. 당시 여성의 무통분만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특히 종교적 관점이 더해지면서 더욱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의 출산의 고통은 하나님이 내린 벌이기에 이를 없애는 것은 종교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완고한 빅토리아 여왕은 그런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여왕은 무통분만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이를 가능케해준 클로로포름을 예찬했습니다. 

1859년 여왕은 시녀의 딸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에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 어느 누구도 완화시킬 수 없던 고통을 완화 시켜준 클로로포름에 무한한 축복을 내리오"


웨딩드레스 모습의 빅토리아 여왕, 빈터할터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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