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Sep 04. 2015

엘라 대공비의 죽음과 뒷이야기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자 가족들에게는 엘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아름다운 헤센의 엘리자베트 대공녀는 자신의 오촌이 되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결혼을 했다. 세르게이 대공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와 헤센 대공가 출신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자주 외가인 헤센 대공가를 방문했었고 이 때문에 엘라와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신앙심이 깊었던 엘라는 역시 신앙심이 깊고 잘 생긴 세르게이 대공에게 반했었다. 하지만 엘라의 외할머니이자 가족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이 외손녀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여왕은 개인적으로 러시아나 러시아 황실을 싫어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러시아 정세를 걱정했으며 외손녀가 그런 불안정한 나라에서 살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왕은 러시아 황실과 인연을 맺는 것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고 걱정했었으며 이 때문에 외손녀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알려져있다.



어머니의 상중에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있는 헤센 대공가의 아이들




빅토리아 여왕이 우려했던 대로 혼란한 러시아의 상황은 엘라를 고난 속으로 빠지게 했다. 엘라의 남편인 세르게이 대공은 형인 알렉산드르 3세와 마찬가지로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인형의 집"같은 소설마저 못 읽게 할 정도였다고 알려져있다. 어쨌든 그는 모스크바의 총독이었지만 매우 인기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2세처럼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엘라는 끔찍한 테러 현장으로 가서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야만 했다. 원래 신앙심이 깊었던 엘라는 남편이 죽은 뒤에 종교에 더 매진하게 된다. 결국 엘라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한 뒤 수녀가 되었으며 자신의 재산을 모스크바 빈민을 위해 사용했고 자신의 집은 수녀원으로 만들었다. 이런 행동은 엘라 자신이 스스로를 러시아 황실 가족들로부터 고립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엘라는 동생인 알렉산드라 황후와도 사이가 멀어졌는데 엘라는 알렉산드라가 라스푸틴을 신임하는 것을 반대했었고 이에 알렉산드라는 친언니와도 거리를 뒀었다.


세르게이와 엘라



이후 1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러시아 상황은 더욱더 불안정해졌고 급기야 짜르가 퇴위하기에 이르게 된다. 혼란한 상황에서 러시아 황실 가족들 역시 위험 속에 빠지게 되었고 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엘라를 구하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사촌이었던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시도였다. 빌헬름 2세는 한때 엘라에게 구혼한 적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엘라는 이 청혼을 거절했는데 자신은 황후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빌헬름은 평생 자신의 책상에 엘라의 사진을 뒀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엘라는 이런 시도들 모두를 거절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수녀원과 수녀들과 함께 있길 바랬었다.

결국 1918년 4월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는 러시아 혁명정부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수녀 복장의 엘라 대공비



짜르 가족들은 1918년 7월 16일과 17일 사이에 처형당했다. 그리고 황후와 엘라 대공비의 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그 소식을 7월 24일 들었다고 한다. 빅토리아는 막내 동생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또 다른 동생인 엘라 대공비는 무사하리라 기대했었다고 한다. 왜냐면 엘라는 수녀원에 들어간 뒤 가족들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었기에 엘라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소문들이 떠돌았으며 빅토리아는 긍정적 소문을 믿었다.


하지만 엘라 대공비 역시 짜르 가족들이 살해당한 다음날 죽음을 맞이했다.

엘라는 자신의 충실한 동료 수녀였던 바바라 수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리고 엘라는 다른 다섯 명의 러시아 황실 가족들과 함께 알라파이예프스크에 억류되어있었다. 7월 17일에서 18일 사이 엘라와 바바라 수녀 그리고 황족들은 광산 갱도로 끌려가 그곳에 밀어넣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죽지 않았는데, 엘라는 자신의 옷을 찟어서 팔이 부러졌던 황실 가족 중 한명의 팔에 붕대를 감아줬었다. 그리고 그들은 갱도 안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그 후 군인들이 갱도 안에 수류탄을 던져 넣었으며 갱도 안에 있던 이들은 사망했다. 짜르 일가의 죽음이 바로 알려진 것에 비해 이들의 죽음은 아주 늦게 알려지게 된다. 1918년 11월 10일에서야 죽은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엘라의 언니인 빅토리아는 12월까지도 엘라가 우랄산맥에서 살아있다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헤센 대공가의 장녀이자 엘라와 가장 친한 자매였던 빅토리아는 엘라의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이 가 없을 것이지만, 엘라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녀의 깊고 진실한 믿음은 그녀를 고무시키고, 지탱해주고, 평안하게 해 줬을 것이란다.  끔찍하게 가여운 알릭키(역자주: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가 고통당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엘라도 살해당했지만 그 고통은 엘라의 영혼을 건드릴수 없었을 것이란다. 그리고 아마도 엘라가 살아있다면 그녀는 수년간 더 많은 끔찍한 고통을 당했을지도 모르지. 왜냐면 나는 최근 모스크바에 있는 엘라의 모든 사업들이 파괴되었고, 수녀들을 뿔뿔이 흩어졌으며 집은 다른 목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동생들의 죽음을 극복할 수 없었으며, 동생들의 일을 잊기 위해 매일 몇 시간씩 고된 정원일을 했었다. 빅토리아는 동생들의 죽음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두려워했는데, 이 때문에 엘라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동생인 헤센 대공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였다. (동생한테 설명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서 그랬다고 합니다.)


헤센 대공가의 네 자매들, 장녀인 빅토리아는 막내인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엘라-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는 이렇게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엘라의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엘라와 동행들의 시신은 9월 I.S. 스몰린 장군 휘하의 백러시아군이 알라파예브스크를 점령했을 때 발견되었다. 황실 가족들의 시신이 묻힌 갱도를 발견했으며 며칠간 물과 흙더미를 치워낸 후에야 시신들이 밖으로 옮겨졌다. 여섯 명의 황실 가족들과 의사, 시종, 그리고 엘라의 동료였던 바바라 수녀가 그곳에 있었다. 스몰린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시신의 광경은  끔찍했다.....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와 그 수녀[바바라 자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여행복차림이었다. 옐리자베타 표도르브나 대공비는 흰색 넥커치프를 하고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사이프러스 나무로 된 십자가가 그녀의 가슴 쪽에 매달려있었다. 수녀도 같은 옷을 입었고 그녀의 가슴 쪽에는 금 십자가와 시계가 있었다. 다른 시신들을 조사했을 때 몇몇 값어치 있는 금과 은 제품이 시신들에서 발견되었다.  처형자들이 희생자들을 강탈한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할 만큼 그들의 잔혹하고 끔찍한 임무를 매우 서둘렀다는 것이 명백했다.


황실 희생자들은 지역 교회의 매장지에 안장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주민들과 인근 사람들이 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황실 가족들의 시신이 다시 훼손당할 우려가 있었기에 결국 황실 가족들의 시신은 중국 베이징으로 옮겨졌으며 그곳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 묘역에 묻혔다. 하지만 엘라의 여행은 아직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엘라의 언니인 빅토리아는 엘라를 예루살렘에 묻기로 결정했다. 그곳에는 헤센 대공가와 러시아 황실에 뜻깊은 러시아 정교회 교회가 있었다. 성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와 그 동생들이 어머니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를 위해 예루살렘에 세운 성당이었다. 마리야 황후는 헤센 대공가 출신으로 엘라의 대고모였다. 엘라는 남편과 함께 이 성당의 완공 기념식에 참석했었다. 이때 엘라는 자신이 죽은 뒤에 이 성당에 묻히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전해진다. 동생의 일생을 기억하는 빅토리아는 정교회 수녀였던 엘라가 성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에 묻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 결정했고 동생과 바바라 수녀의 시신을 베이징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장했다.


옐리자베트 표도로브나 대공비는 1984년 Russian Orthodox Church Abroad(아마 국외 러시아 정교회정도..--;;;)에서 성인으로 인정받았고 1992년에는 모스크바 대주교에 의해 시성 되었다. 1998년 7월 엘라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서문의 위쪽에 조상이 새겨진 10명의 20세기 기독교 순교자의 한 사람이 되었고, 이 봉헌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엘라의 언니 빅토리아의 외손자)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성 옐리자베타 로마노바는 현재 예루살렘에 있는 성 막달레나 성당에 죽는 순간까지 자신과  함께했던 충직한 자신의 수녀회 자매인 바바라 수녀와 함께 묻혀있다. 그리고 늘 이모의 뒤를 따르고 싶어 했던 조카이자 대녀인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바텐베르크의 앨리스, 필립공의 어머니) 역시 근처에 묻혀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역시 자신이 묻히길 바랬다고 여겨지는 다른 곳인 모스크바의 Marfo-Mariinsky Convent수녀원에 성유물로 모셔져 있다. Marfo-Mariinsky Convent는 엘라가 세운 수녀원이다.


헤센의 엘리자베트 대 공녀,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정교회의 성녀 성 옐리자베타


그림출처

위키 피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