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Jun 07. 2017

"나는 한 남자의 농노가 되지 않겠다"

가벼운 역사 이야기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매우 특이한 존재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녀의 외모는 "바사 가문의 특징"인 크고 긴 코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때문에 그녀는 태어났을때 "사내아이"로 잘못 알려져서 부모가 처음에는 후계자인 아들이 태어났다고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겨우 이 문제를 수습했는데, 아버지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건강한 "적자"가 태어난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어머니인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자신이 딸을 낳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딸에게 적대적이 되었다고도 알려져있다.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는 크리스티나가 6살에 사망했고, 크리스티나는 여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여성"이라는 성이 얼마나 자신을 얽매고 있는지 크리스티나 스스로는 잘 알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신하들과 가정교사들에게 매우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는데 특히 총리이자 섭정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정치가중 한명이었던 악셀 옥센셰르나는 그녀에게 국정을 가르쳤다고 한다. 스스로가 학구적이었으며 똑똑했던 크리스티나는 이런 영향으로 10대시절부터 정치적,군사적 감각이 어느정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1641년 요한 바네르가 사망했을때 크리스티나는 아직 10대중반의 나이였지만 요한 바네르의 죽음이 스웨덴 군의 전력에 큰 타격이 될것을 우려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 스웨덴 군이 혼란에 빠졌던것과 비슷한 상황이 될것을 우려했었고 이것은 현실로 나타났다고 한다. 


10대의 크리스티나



이런 상황은 크리스티나가 성년이 되면서 미묘한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크리스티나는 1644년 성년이 되어서 친정을 하게 된다. 물론 이때 덴마크와 전쟁중이었기에 대관식은 미뤄졌지만 말이다. 문제는 크리스티나가 성년이 됨과 동시에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스스로의 권리로 군주가 되었다. 하지만 당대 많은 관념들처럼 Queen이 홀로 통치하는 것은 비정상적 상황으로 인식되었으며 또 Queen의 가장 큰 의무는 바로 후계자를 낳는 일이라는 것 당시는 물론 후대에도 공감하는 것이었다. 이런 결혼의 압박은 크리스티나에게 단순히 후계자를 낳는 문제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대 여성들은 남성에게 "종속적"관계였으며 크리스티나가 결혼한다면 크리스티나의 남편은 크리스티나의 권리를 통해서 스웨덴의 국왕이 될것이었다. 그리고 그 국왕은 크리스티나보다 훨씬더 큰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컸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크리스티나는 결혼이라는 문제를 자신의 왕권의 걸림돌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결혼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훗날 회고록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한 남자의 농노가 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문제는 남자들의 옷을 입거나 보통 "숙녀"들과 달리 남자들처럼 행동하는 크리스티나의 별난 행동들 때문에 크리스티나가 결혼을 거부한 것이 그녀가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성장과정에서 확실히 자신의 성인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녀는 군주로써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이 당대 여성들이 받는 교육이 아니었으며 결국 이것은 주로 남성들이 받던 교육이었다.  남성들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들과 같은 교육을 받았던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본래 성인 여성에 대해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게 된것은 당연할 결과일수 있다. 


크리스티나 여왕, 남자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소녀시절 사촌이었던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칼 구스타프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을 했다. 많은 사춘기 소녀들처럼 주변에 있던 남자들에게 호감을 느꼈으며 모두들 훗날 그가 그녀의 남편이 될것이라고 여겼기에 크리스티나도 자신이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호감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사실 크리스티나가 진정으로 마음에 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바로 마그누스 드 라 가르디였다. 그는 야곱 드 라가르디와 에바 브라헤의 아들로 잘생기고 매너있는 남자로 알려져있었다. 


마그누스 드 라 가르디, 크리스티나 여왕의 총신



사실 마그누스와의 관계는 좀 복잡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인 에바 브라헤는 한때 크리스티나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사랑했던 사이였었기도 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항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마그누스를 좋아하는 또 다른 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로 크리스티나의 사촌이자 칼 구스타프의 여동생이었던 마리아 유프로신이었다. 크리스티나와 함께 자란 마리아 유프로신은 사촌과 함께 같은 남자를 좋아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이 크리스티나의 결혼에 영향을 미친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크리스티나는 결혼을 포기하고 남편 후보였던 사촌 칼 구스타프에게는 왕위계승자 지위를 줬고, 마그누스 드 라 가르디는 사촌인 마리아 유프로신과 결혼을 주선했다.


팔츠-츠바이브뤽켄=크리부르크의 마리아 유프로신




크리스티나의 삶에서 그녀의 성은 크리스티나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군주로써의 크리스티나는 언제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크리스티나의 기이한 행동들은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식할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녀가 결혼을 거부한것 역시 포함이 될것이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매거진의 이전글 모기 쫓다 성을 불태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