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1066년 두명의 해롤드와 윌리엄
1066년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해이다. 바로 웨섹스 왕가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참회왕 에드워드가 사망하면서 잉글랜드 왕위를 두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11세기 무렵 잉글랜드는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바이킹의 침입과 이에 대항하는 앵글로-색슨계의 웨섹스 왕가의 대립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바이킹들이 잉글랜드를 장악했었다. 어쨌든 복잡한 왕위계승문제를 거쳐서 바이킹 출신의 국왕들이 후손없이 사망한 뒤 다시 한번 웨섹스 왕가 출신의 국왕이었던 참회왕 에드워드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 문제는 매우 불분명했고 결국 잉글랜드 왕위를 둘러싼 경쟁이 시작된다.
잉글랜드에서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후계자로 에드워드의 처남이자 당대 잉글랜드 최고의 권려자였던 해롤드 고드윈선이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해롤드의 선출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잉글랜드 왕위 계승을 주장하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프랑스식으로는 기욤 정도?)를 자극했다.
윌리엄은 대놓고 해롤드의 왕위 계승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잉글랜드를 침공하려고 준비했다. 물론 해롤드 역시 이런 윌리엄의 침입을 대비하고 있었다.
해롤드가 윌리엄의 침공을 대비해서 잉글랜드 남부 지방으로 갔던 당시 엉뚱하게도 잉글랜드는 북쪽에서 침입을 받게 된다.이 기습공격의 주인공은 노르웨이의 국왕 하랄(영어식으로는 해롤드)였다. 그는 바이킹 출신의 국왕으로 복잡한 잉글랜드 계승 관계 사이에서 역시 계승권을 주장했다. 물론 잉글랜드측에서는 그의 계승 주장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주적은 노르웨이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작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랄의 침공은 해롤드를 당황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서둘로 군대를 이끌고 일단 하랄을 막으러 갔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서 하랄을 당황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투 끝에 하랄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적하나를 물리치고 잠시 쉬고 있던 그때, 해롤드는 다시 한번 소식을 듣게 된다. 노르망디 공작이 잉글랜드에 상륙했다는 이야기였다. 해롤드는 이전의 전투로 병력을 많이 잃었으며 이때문에 병력을 서둘러 다시 모아야했다 그리고 또 엄청나게 빨리 이번에는 잉글랜드 남부로 내려가야했다.
해롤드와 하랄이 싸울때 사실 윌리엄은 잉글랜드에 오고 싶어도 올수가 없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지 않아서 배를 띄울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윌리엄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해진 해롤드와의 전투를 했으며 결국 해롤드를 전사시키므로써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
하랄이 아니라 윌리엄이 먼저 도착했다면 과연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역사에서는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잠깐 생각해볼수 있다. 윌리엄과 해롤드의 전투 상황을 보면 해롤드의 병사들은 숙련된 베테랑이 아니었기에 결국 방어진이 무너지게 되지만, 이전까지 사나운 노르만의 기사들을 상대로 매우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해롤드가 하랄과의 전투를 치루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윌리엄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짜피 해롤드가 윌리엄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하랄이 왔을 것이며 역시 사나운 데인인들을 상대해야했기에 결국 해롤드는 이래나 저래나 왕위를 뺏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될 사람은 안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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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의 승리자인 윌리엄과 패배자인 해롤드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패배자인 해롤드한테 패배한 하랄은 거의 알려져있지도 않다. 역시 안될 사람은 안되는 것일까?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