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케팔로포어(Cephalophore)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매우 유명한 공포 이야기중 하나이다. 워싱턴 어빙의 단편 모음에 들어가는 이 이야기는 "립반 윙클"이야기와 더불어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슬리피 할로우 전설에서 목없는 사람은 자신의 잃어버린 목을 찾기 위때 떠도는 한 기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전설에서 이 목없는 기수는 18세기 사망한 인물로 목이 잘렸지만 그의 목은 찾을수 없어서 그냥 묻혔으며 이때문에 매일 밤 자신의 목을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미국인들의 상당 부분은 유럽 출신이었으며 이 이야기는 유럽에서 일상적으로 알려졌었던 "목없는 사람"또는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를 원전으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세시대에는 이 목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성행했다. 특히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목이 잘린뒤 자신의 목을 들고 다니는 성인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나가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생 드니 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성 디오니시오이다. 프랑스와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 디오니시오는 프랑스에서 가장 공경받는 성인중 하나일 것이다. 프랑스 왕가의 영묘가 있는 생드니 대성당은 성 디오니시오의 무덤이 있던 곳에 만들어진것이고, 성 디오니시오는 프랑스 왕가는 물론 프랑스인들 모두에게 공경받는 성인이기도 했다. 성 디오니시오는파리의 대주교로 몽마마르트 언덕에서 목이 잘린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순교후 성 디오니시오는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걸어갔고, 성인의 몸이 멈춘곳에 성인의 시신을 안장하고 "생드니 대성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생드니 대성당은 후에 프랑스 왕가의 매장지가 되었으며 이것은 성 디오니시오가 프랑스에서 매우 중요한 성인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 디오니시오만이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걸어간 유일한 성인이 아니었다. 성 디오니시오의 행적과 유사한 행적을 가진 성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3세기 프랑스 출신으로 알려진 보베의 성 유스투스 역시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걸었다는 행적이 전해진다. 성 유스투스는 순교할때 9살이었는데, 목이 잘린 직후 머리 없는 몸이 머리를 들고 걸었으며, 심지어 잘린 머리에서는 몇마디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출신으로 주로 에스파냐에서 공경받는 성인인 기네드 드 라 자라 (Ginés de la Jara) 역시 자신의 목을 들고 걸었다고 알라져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 예술작품이나 그림속에 나타나는데 특히 자신의 머리를 들고 이동하는 인물들을 케팔로포어(Cephalophor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대충 목을 들고 걷는 이 정도로 해석될수 있는 단어인데, 이런 이적을 가지는 성인들은 성 디오니시오 같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인들부터 특정 지역에서만 공경받던 지역의 성인들까지 모두 합치면 100여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런 이적들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유럽 문화에서 목이 잘리고도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설이 매우 친숙하다는 의미일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이전의 사회에서도 알려진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크며, 아일랜드 전설에 남아있는 "둘라한(Dullahan )이야기가 이런 알려진 이야기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아일랜드 전설에서 둘라한은 머리가 없는 남자나 여자 기수로 자신의 목을 들고 말을 타고 있는 형태로 묘사된다. 이들은 죽음의 상징이었으며, 처음에 언급한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아마도 이 둘라한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둘라한이 결국 켈틱 전설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기독교 이전 시대부터 자신의 목을 들고 다니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퍼져있었으며 이것이 결국 기독교와 만나면서 성인들의 행적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 중세의 문학 작품에도 이런 잘린 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14세기 작품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라는 작품에서도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다니는 기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작품은 켈트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인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중 한명인 가웨인 경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것은 이런 이야기가 영국에서 매우 친숙한 주제였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한다.
결국 유럽에서 잘린 목을 들고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랜 전승으로 이어진 주제였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머리가 잘린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들고 다닐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존재가 있다면 이들은 초자연적 존재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숭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면 머리를 잘리는 것은 결국 죽음을 의미하는데, 머리가 잘린 뒤에도 걷거나 행동하거나 심지어 말할수 있다는 것은 그 죽음을 초월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목이 잘린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켈트 신화에서는 죽음을 불러오는 두려운 대상으로 여겨졌었지만, 기독교에서 이것은 "죽음"을 극복한 성인들의 이적으로 묘사되면서 공경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성인에 대한 공경은 죽은이를 되살리고 사망을 이겨낸 구세주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기에, 기독교 사회에서 목이 잘린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전설이 성인들의 행적으로 받아들여진것이라 추측해볼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1. http://www.atlasobscura.com/articles/the-decapitated-saints-who-still-managed-to-hold-their-heads-up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