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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20. 2017

엘리자베스2세와 필립공의 결혼

가벼운 역사 이야기 : 여왕 결혼 70주년 기념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공은 70년전인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을 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여왕님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것이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에 대해서 오래도록 야망을 품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필립 공의 외삼촌이자 "딕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었다. 루이스 마운트배튼은 가문의 전통대로 해군으로 복무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중 한명으로 빅토리아 여왕이 마지막으로 세례식에 참석한 증손자였다. 자랑하길 좋아했던 딕키는 늘 이것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처럼 명예욕이 강했었지만 아버지의 과묵함보다는 어머니의 수다스러움을 닮았다고 알려져있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수다스러웠지만 소탈했다고 알려져이다. 


이런 딕키는 잘생긴 조카를 미래의 여왕과 결혼시키길 원했다고 알려져있다. 필립 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린시절부터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필립공의 외할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로 시집온후 이후 거의 평생을 영국에서 살았다. 빅토리아는 여왕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와 친분이 있었는데 메리 왕비가 결혼할때 필립 공의 어머니인 앨리스가 신부 들러리를 서기도 했었다. 


하지만 둘이 공식적으로 만난것은 1939년 다트머스의 해군사관학교에서였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둘은 여기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사실 여왕이 필립공을 더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었는데, 1940년대 둘의 사이는 그렇게 화르륵 타오르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들과 만남들이 이어졌고 서로에 대해서 점차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를테면 여왕의 숙모였던 켄트 공작 부인 마리나 역시 사촌인 필립과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을 지지했고 둘이 만날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은 점차 사랑에 빠졌고, 필립 공의 집안은 이 관계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사실 무일푼의 왕자가 영국의 장래 여왕과 결혼하는 것은 필립에게 매우 큰 행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왕가에서 필립 공을 반대했다. 영국 쪽에서는 여왕이 영국의 귀족중 한명과 결혼할 것이라 여겼다. 또 여왕의 어머니는 독일인을 싫어했는데 필립 공의 누나들이 모두 독일인과 결혼한 것에 대해 필립 공도 독일인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왕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47년 초결혼 허락을 받았다. 


아마 1947년 2월에서 3월 사이 조지 6세 부부는 자녀들을 데리고 아프리카 순방을 다녀왔다. 그리고 이 여행중 결국 여왕의 부모는 딸의 결혼을 허락했다고 알려져있다. 이후 필립 공은 자주 궁을 방문했고 결국 1947년 7월 9일 둘의 약혼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결혼식은 딱 한가지만 제외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신랑의 누나들이 초대받는 문제에 대해서였다. 2차대전이 막 끝난 영국에서는 반독일 정서가 강했고 모두 독일인과 결혼했던 필립공의 누나들을 초대한다면 국민들의 반 독일 감정을 다시 자극할수 있는 문제였다. 결국 이를 방지하지 위해 누나들 모두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고 오래도록 필립 공의 누나들은 이를 섭섭하게 여겼었다.


하지만 그 외의 필립공 가족들은 모두 참석했다. 비록 그리스 국적을 포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리스 국왕의 사촌이었으며 덴마크 국왕의 육촌이었다. 또 필립 공의 이모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 부인이었기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이들이 참석이 거절될 리는 없었다.


1947년 11월 20일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와 그날 아침 에든버러 공작 지위를 부여받았던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은 결혼했고, 둘은 70년간을 함께 했다.


여왕과 필립 공, 2017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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