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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13. 2017

나는 성공한 덕후!!

가벼운 역사 이야기 : 프랑수아 세브앙 마르소 (1769-1796)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 프랑스는 국경을 맞대고 있던 유럽 모든 나라와 전쟁을 치뤄야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은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장군이었지만 장군 복장 안하고 후사르 복장에 장군 복대만 하셨다는 후사르 덕후이기도 한 이분!


우리나라에서 "마르소"라고 하면 대부분 아름다운 "소피 마르소"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전쟁 중에 혁혁한 공은 세운 인물중 한명도 "마르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프랑수아 세브앙 마르소-드그라비에라는 이름으로 보통은 "마르소 장군"쯤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당시 프랑스에서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특히 그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 전쟁 중 프랑스 군의 최고의 재앙이라고 이야기 될만했다. 얼마나 유명한 인물인가 하면 그의 죽음에 대한 부조가 파리에 있는 개선문에 장식되어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금 할 이야기는 "기사도 정신의 극치"라고 평가 받았던 마르소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젊은 시절 자신의 스타를 만나서 성공한 덕후가 된 이야기이다.


마르소의 죽음, 파리 개선문


프랑스 혁명전쟁이 일어나자 애국심에 가득찬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마르소 역시 입대를 결심한다. 잠시 군인이었기도 했으며 많이 배운데다가 변호사였던 마르소는 곧 장교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그의 첫 전투는 "항복"해야했던 베르됭 요새 함락이었다. 이때 마르소가 항복문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런 좌절을 겪고 나서 좀 복잡한 상황이 되어 마르소는 방데 지역으로 배속된다. 방데 지역은 왕당파가 세력이 강했던 지역으로 프랑스 혁명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농민들이 대부분인 이 지역에서 혁명정부가 전쟁을 위해 엄청난 수의 징병을 하려하자 사람들을 결국 참지 못하고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이것은 내전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방데 내전중 숄레 전투에서, 사실 이때는 이미 마르소는 성공한 덕후 --;;


마르소는 이 내전지역에 있으면서 더욱더 힘든 상황을 겪게 된다. 그는 훈련안된 병사들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의 병사들이 아닌 프랑스 인들을 상대로 전투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르소의 사령관은 혁명정부에 반대하는 방데 사람들을 단지 처단해야할 사람들로만 봤으며 군사적 교육을 받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마르소는 이 때문에 더 힘들어 했었다.


이런 힘든 시기, 아마도 마르소는 외국의 전황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군이 점령한 마인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 프랑스 군이 마인츠를 점령한 뒤에 독일의 반격으로 마인츠는 고립되었다. 포위 공격을 받던 마인츠는 끝까지 버티려 했고 식량까지 바닥나서 말을 잡아먹어야 했을 정도가 될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마르소가 겪었던 베르됭 포위 공격은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빨리 항복을 했었다. 이런 상황과 반대였던 마인츠 상황에 대해 마르소는 아마 깊이 감명을 받았을  것이며 마인츠를 실질적으로 수비했었던 인물인 "클레베르"를 자신의 우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장 바티스트 클레베르, 나폴레옹은 그에 대해서 "전장에 내려온 마르스신"이라는 평가를 했었습니다. 카리스마 있는 뛰어난 군인으로 공화국에 충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때 쯤 방데 지역의 상황은 프랑스 혁명 정부군에 불리했는데, 방데 농민들은 뛰어난 장군들의 지휘를 받고 지역을 잘 아는 잇점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프랑스 혁명 정부는 마인츠를 수비하던 베테랑들을 이곳으로 파견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마르소의 우상인 클레베르가 방데 지역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클레베르가 방데 지역으로 와서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할때 마르소는 클레베르의 휘하가 아닌 다른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우상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참지 못하고 그를 보기 위해 대열을 이탈해서 클레베르에게로 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마르소를 본 클레베르는 지휘관이 대열을 이탈한 것에 대해서 매우 엄중하게 꾸짖고 그를 돌려보냈고 마르소는 매우 부끄러움을 느겼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소 역시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클레베르의 꾸짖음을 가슴 깊이 새겼는지 열심히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아마도 클레베르는 이런 마르소에 대해서 점점더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클레베르는 마르소를 자신의 곁에 두고 마치 어린 남동생이나 아들처럼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으며 결국 둘은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다. 당대 한 사람은 마르소와 클레베르에 대해서 "이들 둘이 나라를 구할 것이다"리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마르소는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플뢰뤼스 전투, 흰말탄사람(주르당) 뒷쪽에 후사르 덕후인 마르소 옆이 클레베르, 성공한 덕후의 증거==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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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소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해주세요.

https://brunch.co.kr/@elara10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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