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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Dec 11. 2017

누구맘대로 결혼해!이 결혼 무효야!

가벼운 역사 이야기 :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4세와 빅토리아 여왕

딸인 앨리스가 죽은뒤, 사위인 헤센의 루드비히 4세와 외손주들인 헤센 대공가문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빅토리아 여왕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4세는 헤센 대공가문의 잘생긴 외모로 빅토리아 여왕의 마음에 흡족한 사위였다. 그는 여왕의 둘째딸인 앨리스 공주와 결혼했는데 이 결혼은 사실상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의 큰 그림을 위한 것이었다.앨버트 공은 장녀를 프로이센의 왕위계승자와 결혼시켰다. 그리고 차녀는 헤센 대공가문의 후계자와 결혼시킨다.

사실 헤센 대공가문은 그리 큰 대가문이 아니라고 여겨진 가문이다. 헤센 대공가문의 중심 도시인 다름슈타트는 인근의 프랑크푸르트에 비하면 시골동네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헤센 대공가문은 러시아와의 통혼 관계 때문에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앨버트 공이 둘째딸을 이 가문으로 시집보냈던 것이었다.


헤센의 루드비히 4세, 젊은 시절,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 빅토리아 여왕이 좋아한 사위였습니다.


루드비히의 잘생긴 외모와 영국 공주라는 앨리스의 신분은 앨리스와 루드비히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었고, 둘은 행복하게 약혼한다. 하지만 둘의 약혼 기간중 빅토리아 여왕 삶의 가장 큰 비극이 일어났다. 바로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이 죽은 것이었다. 여왕은 남편이 죽고 난뒤 패닉상태에 빠졌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했다. 이런 어머니를 다독이고 동생들을 돌본것은 바로 앨리스였다. 여왕은 앨리스를 의지했고, 앨리스를 필요로하게 된다. 하지만 앨리스는 곧 결혼해야했다.

여왕은 앨리스를 멀리 떠나보내기 싫었지만 남편의 결정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앨리스는 루드비히와 영국에서 결혼식을 했다.이 결혼식은 신부측 가족들이 모두 울었기에 결혼식이라기 보다는 장례식에 가까웠다고 한다. 앨리스의 동생들은 아버지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언니이자 누나가 떠난다는 생각에 결혼식에서 울었다고 한다. 여왕 역시 딸을 떠나보내는 것에 눈물을 보였었다. 물론 신혼 부부는 바로 독일로 가지 않았고, 여왕곁에서 좀 살았는데, 여왕은 사위가 헤센 대공가문의 후계자만 아니었다면 평생 잡아뒀을 것이다.


앨리스와 루드비히



울음바다가 된 결혼식이 불길한 징조로 보일정도로, 앨리스와 루드비히의 결혼생활을 불행했다. 물론 둘은 치고 받고 싸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이해못했는데, 루드비히는 자선사업에 열성을 다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고, 앨리스는 남편이 학구적이지 않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앨리스는 한 편지에서 "우리 사이는 마치 평행선과 같습니다. 만날일이 없겠죠"라고 언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둘을 부부로 묶어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못지 않았으며 이것은 앨리스와 루드비히의 결혼 생활을 지탱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결혼은 1878년 겨울 끝나게 된다.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4세와 그 가족들은 둘째딸인 엘리자베트(엘라)를 제외하고 모두 디프테리아에 감염된다. 앨리스 대공비는 남편과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막내딸을 디프테리아로 잃었으며, 결국 자신도 디프테리아로 아버지 앨버트 공의 기일이었던 12월 14일 사망했다. 앨리스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는데 특히나 어머니를 잃은 헤센 대공가문의 아이들의 충격은 매우 컸었다. 


앨리스가 죽은뒤 모두가 슬픔에 잠겼지만 삶은 지속되었으며 헤센 대공가문의 아이들은 자라났고, 헤센의 대공인 루드비히 4세는 여전히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죽은 뒤의 헤센 대공 가문의 아이들, 1880년



세월은 흘러서 앨리스의 장녀인 빅토리아가 결혼하게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외손녀를 가장 사랑했으며, 딸이 죽은뒤 딸처럼 여겼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외손녀의 결혼식에 당연히 참석하러 갔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도착에 빅토리아는 기뻐하지 않고 매우 불안해했으며 늘 활기차고 자기 의지가 강한 독립적 여성이었음에도 외할머니가 온 뒤에 자기 방에 들어가서 울면서 나오지 않기도 했다.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와 헤센의 빅토리아



빅토리아의 노심초사는 바로 아버지인 헤센 대공때문이었다. 루드비히 4세는 사실 딸의 결혼을 반대했었긴 하지만 뭐 딸을 너무 사랑해서 딸의 결혼을 허락할 인물이었다. 대공은 자신을 도와주던 딸이 결혼하게 되자, 이제 그는 어린 자녀들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대공은 자신에게 아내의 역할을 하고,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할 여성이 필요하다고 여겼으며 한 여성을 찾아내게 된다. 헤센 대공이 찾아낸 여성은 러시아 대사의 아내였던 여성으로 이혼녀였다. 

물론 헤센 대공가문의 아이들이 그녀를 모두 좋아했었으며,이제 결혼할 빅토리아 역시 그녀가 아버지에게 필요한 여성이라고 인정했었다. 이에 대공은 딸의 결혼식전에 러시아 대사의 옛 아내와 귀천상혼을 했었다.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4세


외손녀의 결혼식에 기쁜 마음으로 왔던 빅토리아 여왕은 사위의 느닷없는 결혼소식을 듣고 불과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외손녀 결혼식에 왔더니 사위가 느닷없이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여왕은 사위의 행동에 격노했으며, 헤센의 빅토리아는 자신의 결혼식이 파토 날까봐 전전 긍긍했고, 심지어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았고, 긴장상황때문에 밥도 못먹고 노심초사를 했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말은 그녀의 친척들이나 후손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헤센 대공은 장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진노를 맞닥들여야했는데 그는 장모의 뜻을 거스를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이 일은 여왕의 뜻대로 끝나게 된다. 대공은 결혼을 취소했고, 대공이 결혼하려했던 여성은 연금을 받는것으로 이 일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그리고 여왕은 사위가 자신의 뜻대로 한 것을 알고 다시 늘 좋아했던 사위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


이후 헤센 대공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 대공의 장녀였던 빅토리아는 남편이 영국 해군으로 복무하고 있었기에 남편이 바다에 나가있는 동안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아버지를 도왔으며 동생들을 돌봤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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