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열두번째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리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률 중 하나가 부부가 화목하며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모습이 바로 빅토리아 여왕 가족이었죠. 물론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이 현재와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런 도덕률의 표본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정작 아이들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여왕이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왕위 계승자를 낳아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여왕은 외삼촌인 벨기에의 레오폴 1세에게 "대가족의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아이를 가짐으로써 받게 되는 여러 가지 제약을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좋아하던 승마나 겨울 스포츠를 하나도 즐길 수 없는 것에 짜증냈으며, 임신한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싫어했죠. 통통했던 여왕은 임신하면서 체중이 더욱더 불어났기에 외모에 더 스트레스 받았을 수도 있을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여왕이 사랑한 남편 앨버트는 임신해서 몸이 불어 가는 아내의 모습을 언제나 아름답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또 여왕은 허니문 베이비로 태어난 장녀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애칭 빅키) 때문에 아이들을 더 싫어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단둘이 고작 9개월만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그녀"가 있게 되죠. 앨버트 공은 큰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요즘으로 말하면 "딸바보"가 되어버리게 됩니다. 여왕은 자신보다 딸을 더 사랑하는 듯한 남편의 행동에 서운한 감정을 느꼈으며 질투심마저 느꼈을 수도 있을듯합니다. 이런 상황은 안 그래도 아이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여왕이 아이들과의 사이를 엮어나가는데 좀 더 서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앨버트 공이 워낙 좋은 아빠여서 결국 이 부부는 당시 평균적인 가족 모습이 되는 것이죠.)
여왕은 갓난아이들을 싫어했는데 여왕이 자신의 아이들을 씻기는데 참여한 것은 거의 드물었습니다.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태어났을 때 정도가 되어서야 딸을 목욕시키는데 참여했지만 그 전까지 아기들을 돌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 것이 분명했죠. 특히 여왕은 모유수유를 끔찍이 싫어했는데 훗날 딸인 앨리스 공주가 모유 수유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젖소에 딸의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좀 더 큰 아이들 역시도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왕은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은 예의 범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특히 여왕은 자녀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군주"임을 잊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앨버트 공은 이런 아내에게 "아이들과 진정으로 가까워지려면 그렇게 잔소리만 해서는 안된다"라고 할 정도였으며 여왕의 어머니인 켄트 공작부인도 여왕에게 아이들에게 너그러워지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에 여왕은 "어머닌 자녀가 하나뿐이셨잖아요"라고 대꾸했었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은 어머니를 두려워했습니다. 비록 여왕은 남편인 앨버트 공에 의지했지만 사실 여왕이 화를 내면 남편인 앨버트 공조차 감당이 안되었죠. 앨버트 공은 여왕이 화를 내면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내의 화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렸으며 쪽지로만 대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왕이 많이 화가 날 때면 서재까지 앨버트 공을 따라가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앨버트 공의 이런 방법은 여왕의 화를 가라앉히는데 효과적이었는지 여왕은 남편이 죽은 뒤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빅토리아 여왕은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공주가 바로 곁에 있음에도 말하지 않고 쪽지로만 대화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육 개월 동안이나 말입니다. 이 때문에 여왕의 자녀들과 그 후손들은 감히 여왕에게 반항할 엄두도 못 냈었죠.
비록 빅토리아 여왕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좋은 "할머니"이자 "증조할머니"가 되어갑니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했던 것과는 달리 좀 더 온화하게 손자 손녀들을 사랑했는데 그래도 일단 얌전하고 예쁜 애들을 먼저 편애했다고 하죠. 가끔 여왕의 자손들 중 여왕에게 대꾸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왕에게 매우 무례한 일이었으며 그런 무례가 용납되는 것은 "특혜"이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사랑한 딸이었던 베아트리스 공주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말대꾸를 수시로 했고, 여왕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왕은 다른 자녀들에게 하는 것과 달리 베아트리스의 행동을 눈감아줬었습니다. 아마도 여왕의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 공은 큰딸이 시집 가 버린 후 베아트리스를 가장 아끼게 되었는데, 큰딸때와는 달리 남편이 사랑하는 막내딸에 여왕 역시 좀 더 애정이 갔을듯합니다.
여왕은 손자 손녀들에게는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지만 손자 손녀들 역시 "할머니의 엄한 눈초리"에 대해서는 무서워했었으며 여왕의 손자 손녀들 역시 여왕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피하려 했었죠. 여왕이 가장 사랑했던 손녀는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어머니 앨리스 공주가 죽고 난 뒤 여왕에게는 딸과 같은 존재가 되었죠. 빅토리아는 어머니 앨리스 공주처럼 여왕에게 매우 순종적이었으며 여왕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사실 여왕이 빅토리아를 사랑한 것은 영국에서 태어난 첫 번째 손주였으며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손주였기 때문에 특별히 여기기 시작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헤센의 빅토리아의 총명함 역시 여왕의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잘생긴 외손주 사위까지도 딱 마음에 들었을듯합니다. 이 때문에 여왕은 헤센의 빅토리아와 그 가족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는데 증손자손녀들이었던 바텐베르크 가문 아이들 역시 매우 사랑하게 됩니다. 헤센의 빅토리아의 큰딸인 앨리스는 매우 조용하고 예쁜 아이였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았는데 , 특히 예쁜 애들을 좋아했던 여왕이 사랑하는 증손녀가 되죠. 그런데 이 앨리스에게도 여왕에게 반항한 재미 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여왕은 어린아이에게도 "예의"를 강요했기에, 어린아이였던 앨리스가 놀러 왔을 때, 여왕은 이 증손녀에게 손에 키스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앨리스는 다른 많은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증조할머니의 손에 키스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찰싹 때리면서 "버릇없는 아이"라고 말하자 앨리스는 증조할머니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버릇없는 그랜마"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썼던 헤센의 빅토리아는 이 이일에 대해 "나는 그 버릇없는 아이를 얼른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라고 끝맺고 있습니다.
여왕은 평생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젊은 시절 자신의 아이들에게 했던 것보다는 손자 손녀들, 증손자 증손녀들에게 훨씬 더 너그러운 할머니였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