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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an 04. 2018

두 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 (2)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두번째- 부모와 가족

빅토리아 멜리타는 영국의 왕자이자 에든버러 공작이었으며 후에 백부의 뒤를 이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는 앨프러드와 그의 부인인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더키의 부모,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와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그녀의 남편인 앨버트 공의 둘째아들로 어려서부터 해군으로 성장했었다. 당대 해군 장교가 되려면 어려서부터 배에서 지내면서 배에 대해서 익숙해져야했다. 그리고 앨프러드는 12살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어려서 집을 떠나 바다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해군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왕자의 지위만으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앨프러드는 이런 바다 생활이 잘 맞았지만, 그는 육지에서의 생활은 바다에서의 생활보다 잘 하지 못했고 육지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언제나 바다의 임무를 향해 떠나갔다. 앨프러드는 후계자가 없는 백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2세의 후계자였으며 백부가 죽은뒤 결국 공작령을 상속받게 된다.


형인 에드워드 7세와 동생인 코넛 공작 아서와 함께 있는 앨프러드(맨 오른쪽)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야 엘렉산드로브나(헤센의 마리)의 딸로 태어났다. 일곱 형제중 유일한 딸이었던 마리야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딸이었으며 특히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2세는 딸이 어렸을때부터 매우 예뻐했었다. 그 결과 마리야는 러시아 궁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중 하나였으며 언제나 찬사가 따르던 인물이었다. 이런 환경은 그녀가 "오만하다"거나 "고집이 세다"라는 평가를 받게 하는 원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지적이었으며 교육을 잘 받았었다.


마리야와 앨프러드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마리야는 영국 사교계에 적응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러시아 궁정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마리야가 영국 사교계에서는 동서였던 웨일즈 공비 알렉산드라의 뒤에 가려져있어야만 했다. 알렉산드라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마리야보다 교육을 잘 받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성품에 제1 왕위계승자인 알렉산드라에 영국 사교계는 호의적이었던 반면, 러시아 황제의 딸이며 교육을 잘받았지만 알렉산드라보다 미모나 남편의 지위가 떨어지는 마리야는 뒷전이었다. 게다가 마리야의 러시아식 생활 방식에 대해 영국 왕실에서 어느정도 불만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를테면 러시아는 매우 추운 지역이기에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냈으며 마리야 역시 그랬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추위가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마저 도움을 준다고 믿었고, 이런 의견차이는 여왕이 며느리의 생활방식을 못마땅해하고 간섭하는 계기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은 만만한 시어머니가 아니었다.)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2세와 오빠인 알렉세이(블라디미르인가?) 대공과 남편 에든버러 공작과 함께 있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결혼 초)


아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을때 앨프러드는 주로 바다에 나가있었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문제가 생기면 바다로 도망갔기에 결국 마리야가 모든것을 떠안아야했고 힘든 결혼생활을 보내야만했다.


마리야와 앨프러드 사이에서는 여섯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다섯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다. 첫째 아이는 아들인 앨프러드로 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아들이었다. 그리고 나머니 넷은 모두 딸들로 첫째는 마리, 둘째는 빅토리아 멜리타, 셋째는 알렉산드라 막내는 베아트리스였다. 빅토리아 멜리타는 둘째 딸로 그녀의 이름은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과 해군으로 몰타섬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멜리타"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그리고 가족들은 빅토리아 멜리타를 애칭으로 "더키"라고 불렀다.


앨프러드와 마리야 그리고 자녀들과 친척들 , 서있는 세명의 남자는 친척들로 맨오른쪽에서 조지 5세, 바덴의 막시밀리안,헤센의 에른스트 루드비히


어린시절 더키는 세 자매들과 함께 어머니의 영향력아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주로 바다에 나가있었으며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 대부분은 어머니인 마리야 공작부인이 책임지고 있었다. 이때문에 빅토리아 멜리타와 그 자매들은 다른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들보다 좀 덜 영국적으로 성장했었으며 이것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들이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률에 억매여있던것과는 좀 다른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멜리타는 어머니를 닮았던 다른 자매들과 달리 자매들중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았었다. 이때문에 그녀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으며 올리브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문에 빅토리아 멜리타는 가장 친했던 자매인 언니 마리와 함께 있으면 늘 마리가 아니라 더키가 언니라고 오해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왼쪽에서 마리(미시),빅토리아 멜리타(더키),알렉산드라(산드라)


어린시절의 더키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주로 몰타섬에서 거주했었고 이것은 그녀나 그녀의 자매들이 좀더 궁정에서 자유롭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많은 왕족들처럼 친척들을 만나고 친척들을 방문하는 것이 일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의 집에는 주로 웨일즈 공의 해군 아들이었던 조지 왕자가 자주 드나들었었다. 물론 더키의 아버지는 조지의 숙부였기에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수도 있었지만 조지가 더 자주 온것은 더키의 예쁜 언니인 마리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리가 견진성사를 받을때쯤에는 조지는 아예 대놓고 마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아마 더키도 언니와 사촌의 관계를 보면서 로맨스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더키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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