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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an 10. 2018

두 황제의 손녀, 두 대공의 아내(4)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 네번째- 불행한 결혼 생활

빅토리아 멜리타(더키)와 에른스트 루드비히(에르니)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이들은 서로에게 연애감정이 없었으며 결국 이런 감정없이 부부로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에르니는 영국식 교육을 받았으며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더키는 빅토리아 여왕의 며느리중 가장 독립적이었으며 시어머니와 껄끄러운 상황이었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딸이었다. 마리야는 딸들의 교육을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딸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었고 더키 역시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더키와 에르니


결국 부부는 서로에게 불만을 품게 되는데 더키는 에르니가 자신을 아내로 맞은 이상 애정을 줘야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에르니는 더키가 원하는 애정을 주지 않았다. 반면 에르니는 이제 군주의 아내가 된 더키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길 바랬다. 하지만 더키는 아직 어렸으며 이런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강요로 여기게 되었다. 부부는 점차 사이가 더 나빠졌갔는데 이들은 다른 왕족들처럼 처음에는 불행을 내색하지 않았었다. 더키와 에르니의 집을 방문했던 친척이었던 그리스의 니콜라오스 왕자는 더키와 에르니의 집에서 매우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다른 사람들과는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가졌지만 정작 둘만의 시간은 매우 어색하고 불행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달랐는데 더키는 매우 활기찬 사람으로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던 반면 에르니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런 성격은 둘이 싸우는 날이 늘어나면서 더키가 더 격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둘이 싸우던 중에 화가 난 더키가 남편을 향해 차트레이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결혼초 더키는 임신하게 된다. 더키가 임신을 했을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바로 남편인 에르니였다. 에르니는 스스로 아버지가 될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아내가 임신하자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결혼 다음해인 1895년 둘의 딸인 엘리자베트(리틀 엘라)가 태어나자 에르니는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했었다. 엘리자베트는 올리브빛 피부에 더벅머리로 어머니인 더키를 꼭 닮은 아이였다. 그리고 에르니는 아내에게 주지 않았던 애정을 딸에게 마구 퍼부었다. 이런 상황은 더키가 매우 좌절하게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딸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면서 자신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애정을 주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망은 딸의 애정을 두고 남편과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에르니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었고 결국 어린 딸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어린 엄마였던 더키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가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키와 엘리자베트


그리고 더키의 마음이 더 떠나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1897년 더키는 언니인 루마니아의 왕태자비 마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 그녀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바로 남편이 어린 시동과 한 침대에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은 더키가 남편인 에르니에게서 등을 완전히 돌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더키는 이 이야기를 딱 한번 조카에게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에르니가 동성연애경향이 있었던것에 대한 의문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당대 왕족들은 이런 스캔들을 일으키면 안되는 것이었고 결국 더키가 남편에게 실망했지만 이 일에 대해서 입다물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어쨌든 결국 헤센 대공 부부가 불행하다는 소식은 전 유럽에 알려졌으며, 이 소식을 들은 빅토리아 여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 이 결혼은 내가 주선한것이다. 나는 더이상 결혼을 주선하지 안겠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왕은 헤센 대공 부부가 이혼하는 것만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여왕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증손녀인 헤센의 엘리자베트를 위해 부모가 참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었다. 당대에 이혼이라는 것은 엄청난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부모가 이혼한 왕족들 특히 여성 왕족들은 결혼에 매우 심각한 제약을 받았으며 여왕 역시 증손녀가 이런 일을 당하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여왕의 후손들에게 여왕의 말은 절대적이었으며 에르니와 더키는 그냥 참고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있는 더키와 엘리자베트, 나머지는 모두 더키의 사촌들로 맨왼쪽은 에나, 맨 오른쪽은 에나의 동생(모리스인듯), 오른쪽 여성은 헬레나 공주의 딸인 헬레나 빅토리아


하지만 이런 불행한 결혼은 결국 끝을 맺게 된다.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 1월 22일 더키의 할머니이자 에르니의 외할머니였던 빅토리아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둘의 이혼을 막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더키는 이제 불행한 결혼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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