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역사 이야기 : 카롤 1세와 엘리자베타 왕비
루마니아의 카롤 1세는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출신으로 루마니아의 국왕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그는 근대 루마니아의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조카 며느리이자 후계자의 아내였던 에든버러의 마리는 이런 시숙부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루마니아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카롤 1세에게는 매우 낭만적인 아내인 엘리자베타가 있었다. 비트의 엘리자베트는 독일의 작은 가문인 비트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나사우 공작의 딸이었는데, 이런 가족관계로 엘리자베트의 외삼촌은 룩셈부르크 대공이었으며, 이모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다. 또 네덜란드의 왕비, 영국의 알바니 공작부인등이 엘리자베트의 사촌이기도 했다.
엘리자베타는 감수성이 풍부한 매우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카르멘 실바"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했는데 이 필명으로 시나 소설등을 발표했으며, 번역작업도 했다. 왕비 주변에는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있었다. 이런 그녀의 낭만적인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좋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엘리자베타는 종종 정치적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여러행동을 했고 이것은 남편인 카롤 1세에게 골치아픈 문제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타의 이런 행동들 중 하나는 카롤 1세의 후계자에게 한 행동이었다.
카롤 1세와 엘리자베타 사이에서는 딸인 마리아 밖에 태어나지 않았으며 이 딸도 어린시절 사망했다. 이때문에 카롤 1세는 후계자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조카였던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의 페르디난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페르디난트는 왕위계승자로 루마니아로 왔고 루마니아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아마도 엘리자베타는 이런 시조카를 따뜻하게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낯선 나라에 온 그를 위해 여러가지 중요한 일들을 하는데 거기에는 아름다운 연애를 권장하는 것도 있었다.
페르디난트는 왕비의 시녀였던 엘레나 바카레스쿠와 사랑에 빠졌다. 왕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뜯어 말리기는 커녕 페르디난트와 엘레나의 사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왕비는 왕족들이 꼭 왕족들과 결혼해야만한다는 생각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으며, 그렇기에 낭만적인 왕비는 이런 둘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아름답게 끝나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용납될수 없는 일이었다. 카롤이 루마니아의 통치자로 선출된 해인 1866년 재정된 헌법에서는 루마니아 출신이 왕위계승자의 배우자가 될수 없다고 명시되어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루마니아 출신의 여성이 왕비가 되어서 친정쪽 사람들이 국정을 장악할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호엔촐레른 가문은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하고 있었기에 신분에 맞지 않는 결혼을 하는 것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만약 페르디난트가 엘레나와 결혼한다면 그는 루마니아 왕위계승자 지위를 박탈당할것이었다.그리고 이것은 겨우 후계자 문제를 해결했던 카롤 1세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수 밖에 없었다.
카롤 1세는 페르디난트와 엘레나의 사이를 알게 되었고 아내의 역할마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매우 화를 내면서 엘레나와 엘리자베타 왕비를 루마니아에서 추방했고 페르디난트에게는 서둘러 그에게 걸맞는 출신의 왕족 여성을 신붓감으로 찾았다. 그리고 엘리자베타 왕비는 페르디난트가 에든버러의 마리와 결혼 한 뒤에 루마니아로 돌아올수 있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