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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pr 16. 2018

언니가 사고를 치면...

토스카나의 루이제 여대공의 스캔들과 그 여파 (1)

토스카나의 루이제 여대공, 작센의 전 왕태자비


토스카나의 루이제 여대공은 토스카나의 마지막 대공이었던 페르난도 4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부르봉-파르마의 알리시아의 장녀였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이었던 루이제는 여러 왕가에서 혼담이 들어왔고, 17살이었던 1887년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왕자를 만나게 된다.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3세, 작센의 마지막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왕자는 당시 직접적 왕위계승자는 아니었지만 백부에게는 남성 후계자가 없었고 그의 아버지가 제 1왕위계승자였으며 그는 제2왕위계승자로 실질적인 작센의 왕위계승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토스카나의 루이제는 작센의 왕위계승자가 되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게 된다.


루이제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의 결혼


이 결혼은 처음에는 행복해보였다. 루이제 여대공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와 많은 아이들을 낳았으며 작센에서 매우 사랑받는 왕족이 되었고 인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루이제 여대공은 정치적 상황을 점차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녀는 스스로 궁정에서 견제 당한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국왕이 된 자신의 시아버지가 자신의 인기를 질투한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상황은 그녀가 작센 궁정을 못견디게 했고 일곱번째 아이를 임신중이었던 1902년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야반도주를 해버린다.


이것은 작센 궁정에서 매우 큰 스캔들이었는데, 왕태자비가 임신중에 다른남자와 도망간것이었다. 루이제는 정치적 문제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같이 야반도주한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함께 살았기에 결국은 그녀가 부정으로 인해서 도망갔다는 사람들의 의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제의 야반도주에 관련된 사람들


이런 그녀의 행동은 여러가지 문제를 발생하게 된다. 정치적 외교적 문제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바로 루이제의 여동생들이었다. 루이제 밑으로 여동생들이 다섯명이 있었다. 여동생들은 루이제와 나이차가 많이 났는데 바로 밑의 여동생은 9살 차이가 났고 막내 여동생은 무려 21살이나 차이났다. 이때문에 루이제가 스캔들을 일으켰을때 동생들은 하나둘씩 혼기가  찼었다. 그리고 이런 언니가 이런 스캔들을 일으켰기에 루이제의 여동생들에게는 혼담이 끊어지게 된다. 그나마 루이제의 바로 밑의 여동생인 안나 마리아 테레지아는 언니가 야반도주하기 직전인 1901년에 결혼했지만 나머지 동생들은 평생 미혼으로 늙어가게 된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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