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블라디미르 대공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러시아의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은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로 그의 아버지는 알렉산드르 2세의 셋째아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미헨"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알려진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였다. 키릴 대공의 부모는 매우 야심이 컸다고 알려져있으며 가끔 제위를 노리는 인물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키릴은 어린시절부터 바다를 좋아했으며 해군이되기로 결정했다. 그는 15살에 해군으로 입대했으며 해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키릴의 삶에서 중요했던 사람은 그가 사모했던 여인이었다. 그가 사모했던 여인은 사촌이자 더키라는 애칭의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알렉산드르 2세의 외손녀였던 그녀는 고종 사촌이었던 헤센의 대공과 결혼했지만 불행한 삶을 살았고 결국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불행한 결혼 생활중 키릴을 만난 더키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이혼후 키릴과 결혼하길 원했다. 하지만 러시아 황실에서는 이를 원치 않았는데 일단 정교회는 사촌간의 결혼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혼하기 위해서는 짜르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짜리나는 더키의 시누이였던 알렉산드라였고, 알렉산드라는 오빠와 이혼한 더키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혼 허락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키릴은 중요한 황위계승자였기에 그가 허락없이 결혼할 경우 계승권을 박탈당할 우려가 있었고, 이것은 야심이 컸다고 알려진 부모가 원치 않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키릴과 더키를 떼놓기 위해 황실에서는 키릴을 극동지방으로 보내버리게 된다.
키릴은 러시아의 전함으로 당시 함대 기함이었던 페트로파블로프스크의 first officer가 되었고 (...해군 지위는 뭐랄까 해석이 난감해서 저 지위는 함장을 제외하고 제일 높은 장교가 맡던가 그렇습니다. 오랫만에 해군 용어를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0-;;) 이 전함은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포트아서라고 불렸던 뤼순항에 갇히게 된다. (제가 처음 읽었던 글에서 저자가 러일전쟁이 조선에서벌어진 전쟁인줄 알았던것같더라구요. 그래서 Korea에 있는 Port Arthur라고 해서...저기가 과연 어디인가..ㅠ.ㅠ 우리나라에 러시아 함대가 기항했던것인가..ㅠ.ㅠ 라고 울었는데 알고보니가 뤼순항이더라구요.-0-;;)
일본 전함이 항구를 봉쇄하고 있었기에 러시아 군은 어떻게든 이 봉쇄를 풀려고 했었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의 함장이었던 마카로프는 전함대가 항구에서 나와서 일본 전함의 봉쇄를 풀려고 했었다. 1904년 4월 13일 폭풍우치는 밤 대혼란은 시작된다. 정찰을 위해 나섰던 전함 몇척이 폭풍우 때문에 피해를 입었고 이후 예상보다 많은 일본군의 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투의 혼란한 와중에 페트로파블로프스크는 간신히 항구에서 빠져나왔지만 일본군의 기뢰에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키릴 대공은 함장과 함께 브릿지에 서있다가 폭발에 직접적 영향을 입었다. 함장은 사망했고 키릴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폭발로 브릿지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바다에 튕겨져나갔고 이들 모두는 사망했다. 전함은 침몰하고 있었는데, 부상을 입고 바다에 빠졌지만 의식이 있었던 키릴 대공은 훗날 이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떤것이 나를 강하게 물속으로 가라앉게했고, 등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내 주변에 폭풍우 소리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소용돌이가 나를 잡고 그 깔때기의 깊은 검은 부분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미친듯이 소용돌이 방향으로 계속 돌았고,밤처럼 어두워질때까지도 가느다란 나선소용돌이가 있었다. 모든것이 사라진것처럼 보였다. 이제 끝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시 기도를 했고, 마지막으로 내가 사모하는 여인에 대해떠올렸다
키릴 대공이 삶에 대해서 포기하려했을때 소용돌이가 멈췄고 키릴대공은 미친듯이 바다표면을 향해 헤엄쳤다. 그리고 4월달의 차가운 바닷물속에서 배에서 떨어진 조각 하나를 잡고 간신히 구조될때까지 버텼다.
키릴 대공의 생존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으며, 황실 가족들 키릴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물론 가장 기뻤던 사람은 키릴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절망에 빠졌던 키릴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더키였다.
이후 키릴은 더키와 허락없이 결혼해서 한동안 오래도록 러시아에서 추방당하고 그의 군대 지위마저 박탈당했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어서 1910년경에는 더키와의 결혼을 정식으로 인정받아서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해군으로써 다시 복귀했다.
러시아로 돌아온 키릴 대공은 전함의 함장으로 승진했지만 결국 바다에서의 생활을 포기한다. 키릴은 그의 배를 타고 바다에 있을때면 자신이 겪었던 일이 떠올라서 힘들어했으며, 검은 깊은 곳에 대한 악몽을 꿨었다. 결국 키릴은 자신의 해군 경력을 포기했고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