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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05. 2018

난 더 큰 물고기를 노릴꺼야!

니콜라이 2세의 결혼전 정부였던 마틸다 크세신스카야

마틸다 크세신스카야는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발레리나로 매우 뛰어난 발레리나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발레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이었죠.


마틸다 크세신스카야, 그녀는 발레 분장을 할때 황실 남자들에게서 받은 보석을 걸고 나와서 자신의 배경을 과시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당대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발레리나들과 러시아 황실의 대공들 사이의 만남은 어느정도 일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유리한 것이었는데 발리레나들은 자신을 후원해줄 뒷배경이 되어주거나 또는 자신의 평생을 책임져줄 부유한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으며, 대공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늘 만날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황후와 대공비들은 남편의 부정을 참고 살아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러시아 황제들중 결혼후 정부가 없었던 황제는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밖에 없다고 이야기될 정도니까요.)


마틸다 크세신스카야도 이런 관계를 맺어서 자신의 야심을 만족시키려합니다. 그녀는 시시한 대공들은 눈에 차지 않았죠. 최고인 자신에게 걸맞는 인물은 최고의 인물이어야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매우 순정적 사람으로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에게만 헌신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노린 인물은 미혼이었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태자 시절, 1893년


마틸다 크세신스카야는 황태자의 첫여인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다른 여성에게 그 자리를 뺏기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황태자의 정부가 됩니다. 이 관계는 4년정도 지속되지만 결국 파국을 맞게 됩니다. 바로 황태자가 결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죠.


황태자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한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촌관계이자 숙부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처제이자 가족에게 "써니"라는 애칭으로 알려져있던 헤센의 알릭스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으며 가장 예쁜 손녀중 하나였던 알릭스는 언니가 러시아 대공과 결혼하면서 니콜라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헤센의 알릭스, 15살때,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그녀는 어머니 앨리스 공주의 이름을 딴것으로 세례명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 이름이 다 들어갑니다.


알릭스는 영국식으로 성장한 여성이었으며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한동안 중매하는 것을 취미생활로 즐겼던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장손인 웨일즈의 에디와 그녀가 결혼하길 바랬었습니다만, 알릭스 역시 니콜라이와 사랑에 빠진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릭스가 니콜라이와 결혼할만한 가능성은 낮았는데 러시아 황실에서 알릭스가 러시아 황실과 맞지 않는 여성이며 특히 그녀 가계의 혈우병 유전인자 때문에 더 반대했었습니다. 알릭스 역시 러시아로 시집가는 것을 망설였는데 영국식으로 자란 그녀가 러시아에 적응하는 것이 두려웠으며 또 개종해야하는 문제도 있었죠.하지만 결국 니콜라이는 알릭스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었으며, 알릭스 역시 결국 사랑하는 니콜라이와의 결혼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니콜라이와 알릭스, 1894년 약혼때


이렇게 니키와 써니가 한쌍이 되었을때, 뒷일을 걱정해야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마틸다 크세신스카야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황태자의 정부로 발레단에서의 지위가 확고했었는데 이제 황태자가 결혼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황태자비가 그녀를 곱게 볼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발레단에서의 지위도 흔들릴수 있었죠.


니콜라이는 당대에 유약하다는 평가는데 아마도 가정적으로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를 닮아서 였던 듯 합니다. 물론 알렉산드르 3세는 강력한 보수주의자로 적에게 인정사정없었던 인물이었지만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매우 유쾌한 "엉클 사샤"라고 불렸던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니콜라이 역시 오래도록 인연을 맺었던 마틸다 크세신스카야를 잊지 않았고 자신 대신에 그녀의 배경이 되어줄 다른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가 바로 니콜라이 1세의 손자였던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었습니다.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 니콜라이 2세의 막내아들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아들


이렇게 마틸다 크세신스카야는 황태자와 결별했지만 여전히 발레단에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빠져든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의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세르게이 대공 역시 마틸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틸다 크세신스카야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이었던  또 다른 러시아 대공인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이었습니다. 이 두대공들과의 관계는 매우 이상한 관계였는데 마틸다는 두 남자를 다 정리하지 않았고 두 남자 역시 서로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틸다 크세신스카야가 아들을 낳았을때 두 남자는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의 아들


아마도 이런 매력을 가진 마틸다 크세신스카야였기에 황태자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던것이 아닐까합니다. 물론 그 황태자가 평생의 사랑이 될 아내를 만나는 바람에 정리당하긴 했지만 그녀는 또다른 사랑이었던 안드레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과 결국 결혼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마틸다 크세신스카야, 예전에 읽은 글에서 그녀의 이런 남성편력은 도리어 그녀의 발레에 대한 평가를 낮추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혁명후 프랑스에서 망명중일때 안드레이 대공과 마틸드 크세신스카야 그리고 둘의 아들, 안드레이 대공  친척이었던 그리스 왕자들이랑 많이 닮았군요. 처음에 게오르기오스 왕자인줄...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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