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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Dec 17. 2018

이베리아반도는 우리가문것이 될수도 있었는데...

가벼운 역사 이야기 : 포르투갈의 마누엘1세의 야망

결혼으로 제일 성공한 가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일것이다. 스위스의 작은 지방을 통치하던 군주였지만 계속된 결혼관계로 인해서 사돈 가문의 영지를 야금야금 상속받기 시작해서 오스트리아 공작, 로마 왕 지위등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 마리 드 부르고뉴-후아나 라 로카-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안나를 통해서 엄청난 영지를 얻게 되면서 결혼을 통해서 최대의 영지를 얻게 되는 가문이었다.

특히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자신의 두 자녀를 가톨릭 공동군주의 두 자녀와 결혼시키면서 에스파냐와 신대륙의 식민지를 얻게 되는것은 결혼을 통해 얻은 최고의 이익일것이다.


막시밀리안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 그리고 둘의 아들 필리프와 손자들과 손녀 사위인 카를 5세, 페르디난트 1세, 헝가리의 라요시

하지만 사실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시집간 후아나 라 로카의 후손들만 없었다면 그 이전에 아들만 살아있었다면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손에 넣을수 있는 가문이 있었다. 바로 포르투갈의 왕가인 아비스 가문이었다. 아비스 왕가는 포르투갈의 첫 왕가였던 부르고뉴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포르투갈의 국왕 페드루 1세(이녜스 데 카스트로와의 이야기로 유명한 그 인물)의 사생아 아들인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하지만 엄마는 이녜스 데 카스트로는 아님)으로 부터 시작되는 왕가이다.


여기서 말하기는 너무 복잡한 왕위계승문제를 거쳐서 아비스 기사단장이었던 주앙이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1세가 되었고 이때문에 주앙 1세는 부르고뉴 가문의 후손이긴 했지만 이후 가문은 "아비스"가문이라고 불리게 된다.


포르투갈의 주앙 1세,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


어쨌든 아비스 가문은 역시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나라들과 여전히 혼담과 정치적 간섭을 주고받으며 쭈욱 성장해갔다. 그리고 또 여기서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왕위계승문제를 거쳐서 1495년 비세우 공작 마누엘이 국왕 마누엘 1세로 즉위했다.


마누엘 1세는 당연히 이웃의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한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가톨릭 공동군주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당대 많은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혼 동맹을 통해서 두 나라간의 평화를 유지하길 원했다. 그리고 이 결혼 동맹에서 그는 자신의 야심을 살짝 드러낸다.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 부계로건 모계로건 모두 주앙 1세의 후손이었고 그의 누나는 포르투갈 왕비이기도 했습니다.


마누엘 1세는 가톨릭 공동 군주의 딸들중 한명과 결혼하길 원했다. 바로 장녀인 이사벨이었다. 가톨릭 공동 군주에게는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들은 다섯이었는데 그중 아들은 후안 한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딸들이었다. 여성의 왕위계승권을 인정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에 따라 가톨릭 공동 군주의 딸들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는데 특히 후계자인 후안은 병약하다고 알려져있었기에 딸들중 특히 장녀인 이사벨은 왕위계승후보자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었다.


사실 가톨릭 공동 군주의 장녀인 이사벨은 이때 과부였다. 그녀의 남편은 마누엘 1세의 조카였던 아폰수였다. 마누엘 1세의 누나가 바로 아폰수의 어머니이자 포르투갈의 왕비였던 비세우의 레오노르였다. 이사벨과 아폰수의 결혼은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간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사벨의 남편은 결혼 얼마후 사망했으며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사벨은 재혼하길 원치 않고 과부로 지내고 있었다. 물론 이사벨의 부모는 딸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과부로 포르투갈에서 지내게 하지 않았고 에스파냐로 돌아오게 했었다.


아라곤의 이사벨, 아스투리아스 여공, 포르투갈의 왕비


이사벨의 부모는 처음에 마누엘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딸을 시집보내려했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이사벨이 재혼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딸의 뜻을 존중한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마누엘은 기어이 이사벨과의 결혼을 원했다. 마누엘은 이사벨에게 그녀의 소원대로 포르투갈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겠다는 조건으로 그녀와의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마누엘과 이사벨이 결혼한 그해 이사벨의 유일한 남동생인 후안이 사망했고, 후안의 아내는 딸을 사산했기에 결국 이사벨은 왕위계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이사벨의 부모가 사망한다면 마누엘은 순조롭게 아내의 권리를 통해서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할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컸다.(카스티야와 아라곤의 합병관계가 좀 애매해서 문제가 될수도 있었다. 하지만 훗날의 사례를 보면 뭐....) 그리고 만약 이사벨이 아들을 낳는다면 아마 아무런 이의없이 외조부모의 왕국을 모두 상속할수 있었다.


왕위계승자가 된 직후 이사벨은 임신을 한것이 알려진다. 아마 마누엘에게는 가장 좋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498년 8월 이사벨은 마누엘이 매우 기뻐하게도 아들인 미겔을 낳게 된다. 하지만 아들을 낳은 직후 이사벨은 사망했다.


이사벨은 죽었지만 마누엘의 아들인 미겔은 이사벨의 유일한 아들이었으며 법에 따라서 외조부모의 왕국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된다. 그리고 그는 마누엘의 후계자였기에 이후에 포르투갈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고 결국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상속받을 인물이 되었다. 아마 마누엘은 자신의 후손이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통치할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대는 1500년 아들 미겔이 사망하면서 깨지게 된다.

미겔이 죽음으로써 에스파냐 왕위는 이사벨의 여동생이자 남편을 너무나 사랑해서 아이들을 한가득 낳았던 후아나(후아나 라 로카)의 아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후아나의 남편이 바로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의 아들인 필리프이다. 그래서 결국 에스파냐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아라곤의 후아나(후아나 라 로카)


더하기

.하지만 마누엘이 이 가문과의 통혼을 여기서 끝낸것이 아니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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